3편. 반도체는 왜 미래 산업의 쌀로 불렸을까
3편. 반도체는 왜 미래 산업의 쌀로 불렸을까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작은 부품이 왜 한 기업과 한 나라의 미래를 좌우하게 되었을까
「삼성은 왜 반도체에 뛰어들었을까?」 전체 시리즈
삼성은 왜 전자산업에 주목했을까
1970~80년대 일본 전자산업은 왜 두려운 상대였을까
반도체는 왜 미래 산업의 쌀로 불렸을까
이병철과 이건희는 왜 반도체를 선택했을까
삼성은 왜 모두가 위험하다고 한 메모리 반도체에 투자했을까
반도체 공장은 왜 막대한 돈과 긴 시간을 필요로 했을까
삼성은 기술과 인재를 어떻게 확보했을까
불황 속에서도 삼성은 왜 투자를 멈추지 않았을까
삼성은 어떻게 일본 기업을 따라잡고 세계 시장에 올랐을까
삼성의 반도체 도전은 한국 산업을 어떻게 바꾸었을까
1970~80년대에 반도체는 흔히 ‘산업의 쌀’이라고 불렸습니다. 쌀이 여러 음식의 기본 재료가 되듯, 반도체는 수많은 전자제품과 산업기계 안에 들어가는 기본 부품이라는 뜻입니다. TV와 라디오, 전화기와 계산기, 자동차와 공장 설비는 겉모습도 쓰임도 다르지만, 전자적으로 움직이고 판단하고 기억하려면 결국 반도체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이 비유는 반도체가 많이 쓰인다는 뜻만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쌀이 부족하면 식탁 전체가 흔들리듯, 핵심 반도체가 부족하면 자동차도, 컴퓨터도, 통신장비도 제때 만들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반도체는 작은 부품이면서도 산업 전체의 속도와 방향을 바꾸는 힘이 되었습니다.
반도체는 전기를 ‘흐르게도, 멈추게도’ 하는 물질이다
반도체라는 이름은 전기가 잘 흐르는 도체와 전기가 거의 흐르지 않는 부도체의 중간 성질을 가진 물질이라는 데서 나왔습니다. 대표적인 재료가 실리콘입니다. 실리콘 자체는 평범한 모래와 같은 규소에서 얻을 수 있지만, 매우 순수하게 만들고 아주 정교하게 가공하면 전기의 흐름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전기가 흐르도록 할지, 막을지, 얼마나 흐르게 할지를 통제하는 가장 기본적인 장치가 트랜지스터입니다. 트랜지스터는 아주 작은 전기 스위치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스위치가 켜지면 1, 꺼지면 0이라는 정보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 단순한 두 상태를 엄청나게 빠르게 바꾸고 조합하면 숫자를 계산하고, 글과 사진을 저장하며, 음악과 영상을 처리할 수 있습니다.
한때 전자기기에는 진공관이 쓰였습니다. 하지만 진공관은 크고 뜨거우며 전기를 많이 먹고 쉽게 고장 났습니다. 트랜지스터가 등장하면서 기기는 작아지고 가벼워졌고, 훨씬 적은 전력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라디오가 손에 들릴 만큼 작아지고, 컴퓨터가 방 하나를 차지하던 기계에서 책상 위의 기계로, 다시 주머니 속 스마트폰으로 들어온 출발점도 여기에 있습니다.
칩 하나 안에는 수많은 작은 스위치가 들어 있다
반도체 칩은 단지 작은 검은 부품이 아닙니다. 실리콘 웨이퍼 위에 수많은 트랜지스터와 회로를 새겨 넣은 초소형 공장에 가깝습니다. 어떤 칩은 계산을 맡고, 어떤 칩은 정보를 저장하며, 어떤 칩은 화면과 소리, 통신 신호를 처리합니다.
가장 쉽게 나누면 세 가지 역할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연산용 반도체는 계산하고 명령을 처리합니다.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가 여기에 가깝습니다.
메모리 반도체는 데이터를 기억합니다. 작업 중인 정보를 잠시 저장하는 D램과 사진·문서·프로그램을 오래 보관하는 낸드플래시가 대표적입니다.
제어용 반도체는 센서와 모터, 화면과 통신장치를 움직입니다. 자동차의 제동장치, 세탁기의 회전, 공장의 로봇팔도 이런 칩의 도움을 받습니다.
제품 하나에는 이런 반도체가 여럿 들어갑니다. 컴퓨터는 계산 칩과 메모리, 화면을 위한 칩, 통신 칩이 함께 있어야 작동합니다. 자동차도 더 이상 엔진과 바퀴만으로 움직이는 기계가 아닙니다. 연료를 조절하고, 브레이크를 제어하고, 충돌을 감지하고, 운전자에게 정보를 보여 주는 수많은 전자장치가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반도체가 발전하면 단지 컴퓨터만 빨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통신, 의료장비, 공장 자동화, 자동차, 국방과 우주기술까지 함께 달라집니다. 반도체를 미래 산업의 쌀이라고 부른 까닭은 바로 이처럼 한 부품의 성능 향상이 여러 산업의 성능 향상으로 번지기 때문입니다.
전자제품을 만드는 것과 핵심 부품을 만드는 것은 다르다
TV를 만든다고 해서 TV 안의 모든 부품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완성품 기업은 화면과 케이스, 회로기판, 수많은 부품을 사 와 조립할 수 있습니다. 처음 전자산업에 들어가는 기업에는 이것도 매우 중요한 출발입니다. 제품을 대량 생산하고 품질을 관리하며 소비자를 이해하는 경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품의 핵심 반도체를 외국에서만 사 와야 한다면 한계도 분명합니다. 부품 가격이 오르거나 공급이 끊기면 완성품 공장도 멈춥니다. 더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어도 핵심 부품의 성능과 공급 조건을 다른 나라 기업에 의존해야 합니다. 반대로 반도체를 직접 만들 수 있다면, 자기 제품에 필요한 부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더 높은 기술의 제품으로 갈 길을 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삼성에게 중요했습니다. 삼성은 처음에는 TV와 가전제품을 만드는 기업이었습니다. 그러나 전자제품을 더 많이 만들수록, 제품의 가치가 화면이나 껍데기에만 있지 않고 그 안에서 계산하고 기억하고 신호를 처리하는 칩에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반도체는 전자산업의 한 부품 분야가 아니라, 전자산업 전체의 주도권과 연결된 분야였습니다.
반도체는 ‘많이 만들수록’ 더 강해지는 산업이었다
반도체 산업에는 독특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공장을 짓고 장비를 들여오며 기술자를 길러 내기까지 막대한 돈과 시간이 듭니다. 그런데 일단 공정이 안정되고 생산량이 늘어나면, 한 장의 웨이퍼에서 얻는 좋은 칩의 비율을 높이고 같은 비용으로 더 많은 칩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반도체는 기술만의 경쟁이 아니라 생산 규모와 자본, 경험의 경쟁이 됩니다. 먼저 대규모 생산에 성공한 기업은 더 많은 수익을 연구개발과 다음 공정에 투자할 수 있습니다. 뒤따르는 기업은 이미 앞선 기업이 쌓아 둔 장비, 공정 경험, 고객 신뢰를 넘어서야 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일본 기업들이 1980년대 강해졌고, 삼성은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 더 위험한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반도체 공장 하나를 세우는 일은 제품 하나를 새로 내놓는 일과 달랐습니다. 몇 년 뒤의 시장을 내다보고, 오늘 거대한 돈을 먼저 묻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작은 칩이 국가의 문제로 바뀐 이유
반도체는 기업의 수익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산업입니다. 휴대전화와 컴퓨터, 자동차와 의료장비, 전력망과 통신망, 방위산업까지 모두 반도체에 기대기 때문입니다. 칩 공급이 흔들리면 여러 산업의 생산 일정이 함께 흔들립니다.
그래서 반도체는 시간이 갈수록 경제안보의 문제로도 불리게 되었습니다. 한 나라가 모든 종류의 칩을 혼자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설계, 제조장비, 소재, 웨이퍼 생산, 조립과 검사에 서로 다른 나라와 기업이 참여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칩을 전혀 확보하지 못하면 다른 산업까지 타인의 결정에 좌우될 수 있습니다.
1970~80년대 삼성 경영진이 보았던 반도체의 의미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반도체는 당시의 TV와 계산기에만 들어가는 부품이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등장할 컴퓨터와 통신, 자동화와 정보산업의 기반이 될 물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건희는 훗날 반도체를 나라의 미래를 이끌 산업으로 보았다고 회고했습니다.
반도체를 ‘미래 산업의 쌀’이라고 부른 말에는 이런 판단이 들어 있습니다. 누구나 필요로 하지만 아무나 안정적으로 만들 수는 없는 물건, 그리고 한 번 경쟁력을 얻으면 수많은 산업을 함께 움직일 수 있는 물건이라는 뜻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병철과 이건희가 왜 바로 이 위험하고 어려운 산업을 선택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한 사람은 공장과 자본, 제조업의 경험을 쌓았고, 다른 한 사람은 다음 세기의 산업을 보았습니다. 두 판단은 어떻게 삼성의 반도체 도전으로 이어졌을까요?
글을 위한 참고 자료
OECD, 「Vulnerabilities in the Semiconductor Supply Chain」
OECD, 「Mapping the Semiconductor Value Chain」
Semiconductor Industry Association, 「Introduction to Semiconduc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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