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삼성은 왜 전자산업에 주목했을까?

 

1편. 삼성은 왜 전자산업에 주목했을까?

설탕과 비료를 수입하던 기업은 어떻게 전자와 반도체를 꿈꾸게 되었을까

「삼성은 왜 반도체에 뛰어들었을까?」 전체 시리즈

  1. 삼성은 왜 전자산업에 주목했을까

  2. 1970~80년대 일본 전자산업은 왜 두려운 상대였을까

  3. 반도체는 왜 미래 산업의 쌀로 불렸을까

  4. 이병철과 이건희는 왜 반도체를 선택했을까

  5. 삼성은 왜 모두가 위험하다고 한 메모리 반도체에 투자했을까

  6. 반도체 공장은 왜 막대한 돈과 긴 시간을 필요로 했을까

  7. 삼성은 기술과 인재를 어떻게 확보했을까

  8. 불황 속에서도 삼성은 왜 투자를 멈추지 않았을까

  9. 삼성은 어떻게 일본 기업을 따라잡고 세계 시장에 올랐을까

  10. 삼성의 반도체 도전은 한국 산업을 어떻게 바꾸었을까


오늘의 삼성은 반도체와 스마트폰, TV와 가전제품을 만드는 거대한 전자기업입니다. 그러나 삼성의 출발점에는 칩이나 컴퓨터가 아니라 국수와 무역, 설탕과 비료가 있었습니다. 삼성은 왜 전자산업에 들어갔을까요?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이병철이 전쟁 뒤 어떤 방식으로 다시 사업을 일으켰는지부터 보아야 합니다.

전쟁 뒤, 설탕과 비료를 찾아낸 사람

이병철은 부유한 지주 집안에서 자랐지만, 한국전쟁은 삼성물산의 사업 기반을 무너뜨렸습니다. 전후의 부산은 물자가 모자라고 가격이 크게 흔들리던 시장이었습니다. 이병철은 그 혼란 속에서 일본에 고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읽었습니다. 그는 고철을 모아 일본으로 내보냈고, 그 대금으로 홍콩 등지에서 비료와 설탕을 들여와 국내에 공급했습니다.

이 일화가 중요한 이유는 설탕을 팔아 돈을 벌었다는 데만 있지 않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당장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어느 나라에는 무엇이 부족한지, 그리고 무역으로 번 돈을 어디에 다시 써야 하는지를 읽었습니다. 전쟁 뒤의 기업가는 책상에서 시장을 배우기보다 항구와 창고, 부족한 물자 속에서 시장을 배웠습니다. 삼성은 그 시기에 다시 자본을 만들고 무역회사로 재기했습니다.

수입으로 번 돈을 공장으로 바꾸다

그러나 이병철은 수입을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산업의 끝이라고 보지 않았습니다. 설탕을 외국에서 들여와 팔면 당장의 이익은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라가 계속 수입에만 의존하면 가격과 공급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삼성은 1953년 제일제당을 세우고, 당시 수입에 의존하던 설탕을 국내에서 생산하는 길로 들어갔습니다.

여기서 삼성의 산업 방식이 드러납니다. 먼저 부족한 물자를 거래하며 시장을 읽고, 다음에는 그 물자를 직접 만드는 공장을 세운다는 방식입니다. 설탕 공장은 단순히 식품을 만드는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원료를 조달하고 설비를 들여오며, 노동자를 훈련하고 생산량과 품질을 관리하는 제조업의 학교였습니다.

설탕과 반도체는 전혀 다른 상품입니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하나의 공통된 질문이 있습니다. 한국이 꼭 필요한 물건을 계속 외국에서 사 와야 하는가, 아니면 우리 손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하는가. 삼성의 전자산업 진출은 바로 이 질문이 더 높은 기술의 영역으로 옮겨 간 결과였습니다.

일본은 배움의 대상이자 넘어야 할 기준이었다

이병철에게 일본은 감정의 대상 이전에 산업을 배워야 할 가장 가까운 교과서였습니다. 일본은 전후 복구를 거쳐 공장과 부품업체, 기술자와 수출시장을 묶어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한국 기업이 전자산업을 시작하려 할 때 일본의 라디오와 TV, 가전제품은 이미 세계 시장에서 강한 경쟁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삼성은 일본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전자산업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1969년 삼성전자를 세우고 일본 산요전기와 합작해 TV 생산을 시작한 것도 그 흐름 속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일본 제품을 계속 조립하겠다는 선언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기술과 생산 방식을 배우고, 공장을 운영하는 경험을 쌓은 뒤, 언젠가는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겠다는 선택이었습니다.

일본은 삼성에게 두 얼굴을 가진 존재였습니다. 하나는 따라 배워야 할 선진 산업국이었고, 다른 하나는 언젠가 반드시 넘어야 할 경쟁 기준이었습니다. 이 긴장감이 훗날 삼성의 반도체 투자와 일본 메모리 기업 추격으로 이어집니다.

전자산업은 다음 단계로 가는 길이었다

1960년대 한국은 수출을 늘려야 성장할 수 있는 나라였습니다. 섬유와 가발 같은 경공업은 중요한 출발점이었지만, 임금과 가격만으로 경쟁하는 산업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더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부품과 설계, 정밀 조립과 품질관리 능력을 쌓아야 했습니다.

전자산업은 그 능력을 한꺼번에 배울 수 있는 산업이었습니다. TV와 라디오, 냉장고와 세탁기를 만들려면 부품을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하고, 수많은 제품을 같은 품질로 생산해야 하며, 해외 소비자가 원하는 가격과 규격도 맞춰야 합니다. 한 대의 TV를 수출하는 과정에는 공장 운영, 기술 도입, 인력 양성, 품질 검사, 판매망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삼성에게 전자산업은 가전제품을 몇 가지 더 만드는 사업이 아니었습니다. 무역기업에서 제조기업으로, 제조기업에서 기술기업으로 올라가기 위한 다음 단계였습니다. 설탕 공장에서 배운 생산의 감각, 일본 산업에서 본 공장과 기술의 연결, 수출 시장에서 익힌 경쟁의 감각이 전자산업 안에서 만났습니다.

전자에서 반도체로

전자산업에 들어간 순간 삼성의 길이 곧바로 반도체로 정해진 것은 아닙니다. 반도체는 TV나 냉장고보다 훨씬 더 큰 자본과 기술, 오랜 연구를 요구하는 위험한 산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자제품을 만들수록 삼성은 제품의 핵심이 화면이나 껍데기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 신호를 처리하고 기억을 저장하는 부품에 있다는 사실을 더 분명히 보게 되었습니다.

훗날 이건희는 자신의 회고에서 반도체가 다음 세기를 이끌 기술이라고 보았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 산업이 단지 삼성이 성장할 다음 사업이 아니라, 한국이 값싼 노동력과 조립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벽을 넘어설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선택이 실제 공장과 연구소, 수많은 기술자와 투자로 바뀔 수 있었던 것은 이병철 세대가 이미 공장과 자본, 제조업의 경험을 쌓아 두었기 때문입니다.

삼성이 전자산업에 주목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전자는 커지는 세계 시장이었고, 한국이 제조 역량을 높일 수 있는 산업이었으며, 삼성이 수입과 무역을 넘어 기술을 직접 만드는 기업으로 바뀔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길은 결국 한 기업의 미래를 넘어, 한국이 앞으로 무엇을 만들고 무엇으로 세계와 경쟁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당시 삼성 앞에 서 있던 가장 큰 벽, 1970~80년대 일본 전자산업의 힘을 살펴보겠습니다. 일본 기업들은 왜 그토록 강했고, 삼성은 왜 그들을 단순한 경쟁자가 아니라 반드시 넘어야 할 기준으로 보게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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