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편. 지구라트와 바벨탑 이야기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10편. 지구라트와 바벨탑 이야기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메소포타미아의 거대한 신전 탑은 창세기의 바벨탑과 어떻게 연결될까

1부 「고대 문명과 성경의 배경」 진행 순서

1편. 성경의 이야기는 어떤 세계에서 시작되었을까
2편.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어떻게 최초의 도시가 탄생했을까
3편. 수메르 문명은 무엇을 남겼을까
4편. 아카드 제국은 어떻게 최초의 제국이 되었을까
5편. 우르와 메소포타미아의 도시 문명
6편. 고대 바빌로니아와 함무라비 왕
7편. 함무라비 법전과 고대 근동의 법
8편. 고대 근동의 창조 이야기는 무엇을 말했을까
9편. 고대 근동의 홍수 이야기와 창세기
10편. 지구라트와 바벨탑 이야기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11편. 고대 이집트 문명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12편. 가나안은 어떤 지역이었을까
13편. 아브라함 시대의 고대 근동은 어떤 세계였을까
14편. 족장들은 어떤 길을 따라 이동했을까

10편을 시작하며

9편에서는 메소포타미아의 홍수 전승과 창세기의 노아 홍수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홍수 뒤 하나님은 노아와 모든 생물에게 다시는 물로 세상을 멸하지 않겠다는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창세기는 새롭게 시작된 인류가 곧바로 더 좋은 세상을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노아의 후손들은 한곳에 모여 도시를 세우고, 하늘에 닿을 듯한 탑을 쌓으려 합니다. 그리고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이야기입니다.

바벨탑 이야기를 들으면 많은 사람은 곧바로 고대 바빌론의 거대한 탑을 떠올립니다. 실제로 메소포타미아의 여러 도시에는 계단식으로 높이 쌓은 신전 탑, 곧 지구라트가 있었습니다. 바빌론에도 에테메난키라는 거대한 지구라트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바벨탑은 실제 지구라트를 그대로 가리키는 것일까요. 창세기는 지구라트의 건축 기록을 남긴 것일까요.

바벨탑 이야기는 특정 건물의 높이나 구조를 설명하는 글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메소포타미아의 도시와 벽돌 건축, 거대한 신전 탑이 분명히 놓여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지구라트가 어떤 건물이었는지, 바벨탑 이야기와 무엇이 연결되는지, 그리고 창세기는 인간의 도시와 권력, 언어와 흩어짐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지구라트는 어떤 건물이었을까

지구라트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도시의 중심에 세워진 거대한 계단식 신전 탑입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왕의 무덤과 연결되는 건축물이라면, 지구라트는 기본적으로 신전 단지와 연결된 종교 건축물이었습니다. 지구라트 위에는 도시의 수호신을 위한 신전이나 성소가 있었고, 아래쪽에는 제사와 행정, 저장과 노동이 이루어지는 넓은 신전 구역이 자리 잡았습니다.

지구라트는 돌이 풍부한 이집트와 달리, 주로 진흙 벽돌로 만들어졌습니다. 메소포타미아 평야에서는 돌과 나무를 구하기 어려웠지만, 강 주변의 진흙은 풍부했습니다. 사람들은 진흙을 틀에 넣어 말린 벽돌을 만들고, 중요한 건물에는 더 단단한 구운 벽돌을 사용했습니다.

벽돌 사이에는 역청을 바르기도 했습니다. 역청은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검은 방수 물질로, 물과 습기에 약한 벽돌 건축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11장에서 사람들이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라고 말하고, 돌 대신 벽돌을 쓰며 진흙 대신 역청을 썼다는 표현은 바로 이런 메소포타미아의 건축 환경을 떠올리게 합니다.

왜 높은 탑을 세웠을까

지구라트는 단순히 높은 전망대나 왕의 궁전이 아니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도시마다 수호신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르에는 달의 신 난나가 있었고, 우루크에는 아누와 이난나가 있었으며, 바빌론에는 마르두크가 있었습니다. 지구라트는 그 신과 도시가 연결되는 상징적인 장소였습니다.

높이 쌓은 탑은 땅 위의 도시와 하늘의 신을 이어 주는 공간으로 이해되었습니다. 물론 고대인들이 실제로 탑을 타고 하늘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지구라트는 신이 자신의 도시를 돌보고, 제사장과 왕이 신을 섬기는 질서를 보여 주는 종교적 상징이었습니다.

지구라트는 도시의 위엄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멀리서도 보이는 높은 탑은 그 도시가 가진 노동력과 기술, 재산과 권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큰 신전과 높은 탑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은 곧 왕과 도시가 강하다는 뜻이었습니다.

따라서 지구라트에는 종교와 정치, 경제와 건축기술이 함께 담겨 있었습니다.

우르의 지구라트는 무엇을 보여 주는가

우르의 지구라트는 오늘날까지 가장 잘 알려진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르는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우르 제3왕조를 세운 우르남무 왕은 기원전 21세기 무렵 도시를 재건하고, 달의 신 난나를 위한 거대한 지구라트를 세웠습니다.

우르의 지구라트는 여러 층의 벽돌 단 위에 세워졌고, 넓은 계단을 통해 위쪽으로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무너지고 훼손되었지만, 오늘날 남아 있는 유적을 통해서도 당시 건축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건물은 왕이 단지 군사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신전을 재건하고 도시 질서를 세우는 통치자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왕들은 신전과 운하, 성벽을 세우고 복구하는 일을 중요한 업적으로 기록했습니다.

지구라트는 한 도시의 신앙을 보여 주는 장소이면서, 왕권이 신의 질서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기념비이기도 했습니다.

바빌론의 에테메난키는 어떤 탑이었을까

바벨탑과 가장 자주 연결되는 지구라트는 바빌론의 에테메난키입니다.

에테메난키라는 이름은 대체로 “하늘과 땅의 기초가 되는 집”이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이 탑은 바빌론의 중심 신전 에사길라 가까이에 있었으며, 바빌론의 수호신 마르두크와 연결된 거대한 종교 건축물이었습니다.

바빌론은 함무라비 시대 이후 중요한 도시로 성장했고, 훗날 신바빌로니아 시대에는 서아시아의 거대한 제국 수도가 되었습니다. 느부갓네살 2세는 바빌론의 성벽과 신전, 지구라트를 크게 보수하고 재건했습니다.

고대 기록과 고고학 자료는 바빌론에 실제로 거대한 탑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다만 오늘날 남아 있는 유적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그 정확한 높이와 세부 모습에 대해서는 여러 추정이 있습니다.

에테메난키는 오랫동안 바벨탑의 배경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실제로 고대 바빌론의 거대한 탑은 창세기를 읽는 사람에게 바벨탑을 떠올리게 할 만큼 강렬한 상징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벨탑 이야기를 에테메난키 하나와 일대일로 동일시할 수는 없습니다. 창세기 본문은 특정 왕이나 특정 건물의 이름, 정확한 규모를 말하지 않습니다. 바벨탑은 바빌론과 메소포타미아의 도시 문명을 배경으로 하면서, 인간의 집단적 욕망을 보여 주는 신학적 이야기입니다.

바벨은 바빌론을 가리킨다

창세기 11장은 사람들이 시날 땅에서 평지를 만나 그곳에 머물렀다고 말합니다. 시날은 대체로 메소포타미아 남부, 곧 바빌로니아 지역과 연결되어 이해됩니다.

이야기 끝에서 성경은 그 도시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부릅니다. 바벨은 바빌론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이름입니다.

바빌로니아어에서 바빌론은 “신의 문”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빌론 사람들에게 이 도시는 신과 인간의 세계가 만나는 중심 도시라는 의미를 지녔습니다.

그러나 창세기는 바벨이라는 이름을 히브리어의 “섞다, 혼란스럽게 하다”라는 말과 연결합니다. 사람들은 하나의 언어로 힘을 모아 이름을 내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고 그들을 온 땅으로 흩으십니다.

이것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닙니다. 바빌론이 스스로를 신의 문이라고 자랑할 때, 창세기는 그 도시를 인간의 교만과 혼란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다시 해석합니다.

“하늘에 닿는 탑”은 무슨 뜻일까

바벨탑 이야기에 나오는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자”라는 표현은 마치 사람들이 실제 하늘을 침입하려 했다는 뜻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대 근동의 언어에서 “하늘에 닿는다”는 표현은 매우 높고 거대한 건축물이나 강력한 도시를 나타내는 관용적인 표현으로도 사용됩니다.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성벽이 하늘에 닿을 만큼 높다는 식의 표현이 나옵니다.

따라서 바벨탑 이야기는 사람들이 단순히 높은 건물을 지었다는 사실 자체를 비난하는 글이 아닙니다. 도시를 세우고 건축기술을 발전시키며 높은 탑을 만드는 일은 그 자체로 죄가 아닙니다.

문제는 그들이 무엇을 위해 도시와 탑을 세우려 했는가에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 이름을 내자”라고 말합니다. 또한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 때 인간에게 땅에 충만하라고 하신 명령, 홍수 뒤 노아와 그의 후손에게 다시 주신 명령과는 반대되는 방향입니다.

“우리 이름을 내자”는 말은 무엇을 뜻할까

고대사회에서 이름은 단순히 사람을 구분하는 표지가 아니었습니다. 이름은 명예와 기억, 권력과 명성을 뜻했습니다.

왕들은 성벽과 신전, 궁전과 운하를 세우고 자신들의 이름을 벽돌과 돌판에 새겼습니다. 후대 사람들이 자신의 업적을 기억하기를 원했습니다.

바벨탑을 세우려는 사람들도 자신들의 이름을 내려고 합니다. 이 말은 단순히 유명해지고 싶다는 뜻보다 더 넓은 의미를 가집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술과 힘, 도시와 탑을 통해 안전과 영광을 스스로 확보하려 합니다.

도시와 탑은 공동체를 지키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의 이름과 힘을 절대화하는 상징이 될 때, 도시는 다른 사람을 배제하고 지배하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창세기의 바벨탑 이야기는 인간의 능력 자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이 함께 벽돌을 만들고, 도시와 탑을 세울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문제는 그 능력이 하나님 없이 인간 자신의 이름을 높이는 방향으로 사용될 때입니다.

하나님은 왜 사람들을 흩으셨을까

바벨탑 이야기에서 하나님은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고, 그들을 온 땅으로 흩으십니다.

이 장면은 흔히 언어와 민족의 다양성을 벌로만 설명하는 이야기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본문을 조금 더 넓게 보면, 흩어짐은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인간이 한곳에 모여 힘을 절대화하려는 시도를 제한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 때 인간에게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홍수 뒤에도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같은 명령을 주셨습니다. 인간은 한 도시와 한 권력 아래 자신을 가두기보다, 온 땅에 퍼져 살아가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바벨탑을 세운 사람들은 흩어짐을 피하려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의 언어와 하나의 도시, 하나의 거대한 탑으로 자신들의 안전을 확보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계획을 멈추게 하십니다. 이것은 인간의 공동체를 없애기 위한 조치가 아니라, 인간의 힘이 하나의 중심에 집중되어 교만과 폭력으로 변하는 것을 막는 제한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창세기 10장이 여러 민족과 언어가 온 땅에 퍼지는 모습을 보여 준 뒤, 11장에서 바벨탑 이야기를 배치한 것도 이러한 흐름과 연결됩니다.

바벨탑은 과학기술을 반대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바벨탑 이야기를 오늘날의 과학기술이나 도시 문명을 무조건 반대하는 글로 읽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도시를 세우고, 농사를 짓고, 악기를 만들고, 금속을 다루는 인간의 기술이 나옵니다. 성막과 성전의 건축도 정교한 기술과 노동을 필요로 했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창조성과 기술 자체를 악으로 보지 않습니다.

바벨탑의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을 움직이는 마음입니다.

사람들은 벽돌을 만들고 역청을 사용하는 기술을 통해 거대한 건축물을 세우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목표는 하나님께 맡겨진 세계를 섬기는 일이 아니라, 자기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피하는 일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더 큰 도시와 더 높은 건물, 더 빠른 기술과 더 강한 조직을 왜 만들려 하는가.
그것은 사람의 생명과 공동체를 돌보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힘과 명성을 한곳에 모으기 위한 것인가.

바벨탑 이야기는 기술을 포기하라고 말하기보다, 기술과 권력이 누구를 위해 사용되는지 묻습니다.

바벨에서 아브라함으로

창세기의 흐름에서 바벨탑 이야기는 매우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바벨의 사람들은 자기 이름을 내려고 도시와 탑을 세웁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장인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을 부르시며 “내가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벨에서는 인간이 자기 힘으로 이름을 만들려고 합니다.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이 은혜로 이름을 주십니다.

바벨에서는 사람들이 흩어짐을 피하려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보여 주실 땅으로 떠납니다.

바벨에서는 한 도시의 힘이 중심이 됩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이 주어집니다.

이 대조는 창세기의 큰 흐름을 보여 줍니다. 인간이 스스로 높아지려 할 때 생기는 혼란과,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부르셔서 여러 민족에게 복이 흐르게 하시는 길이 서로 대비됩니다.

지구라트와 바벨탑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지구라트와 바벨탑의 관계는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바벨탑은 실제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와 도시 문명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이지만, 특정 지구라트의 건축 보고서는 아닙니다.

창세기 11장의 벽돌과 역청, 시날 땅과 바벨이라는 이름은 메소포타미아의 환경을 떠올리게 합니다. 특히 바빌론의 에테메난키 같은 거대한 지구라트는 바벨탑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을 생각하게 해 줍니다.

그러나 본문의 중심은 탑의 정확한 높이와 위치가 아닙니다. 창세기는 탑과 도시를 통해 인간이 자신의 이름을 높이고, 힘을 한곳에 모아 하나님 없이 안전을 확보하려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지구라트는 고대 도시가 신과 연결되고자 했던 상징이었습니다. 바벨탑 이야기는 그 상징을 사용해, 인간의 교만이 어떻게 혼란과 흩어짐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말합니다.

다음 글로 이어지며

지구라트와 바벨탑 이야기는 메소포타미아의 도시 문명, 벽돌 건축, 신전과 왕권을 배경으로 합니다. 창세기는 그 거대한 도시의 힘을 바라보며, 인간이 자기 이름을 높이려 할 때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보여 줍니다.

메소포타미아가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에서 성장한 문명이라면, 성경 세계의 또 다른 거대한 문명은 나일강을 중심으로 발전한 이집트였습니다.

다음 11편에서는 고대 이집트 문명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나일강은 왜 이집트 문명의 중심이 되었으며, 파라오와 신전, 피라미드는 어떤 사회 속에서 등장했을까요.


참고 자료

4. 성경과 함께한 세계사 4. 성경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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