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편. 고대 바빌로니아와 함무라비 왕

 

6편. 고대 바빌로니아와 함무라비 왕

작은 도시 바빌론은 어떻게 메소포타미아의 중심이 되었을까

「성경과 함께한 세계사」

1부 「고대 문명과 성경의 배경」 진행 순서

1편. 성경의 이야기는 어떤 세계에서 시작되었을까
2편.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어떻게 최초의 도시가 탄생했을까
3편. 수메르 문명은 무엇을 남겼을까
4편. 아카드 제국은 어떻게 최초의 제국이 되었을까
5편. 우르와 메소포타미아의 도시 문명
6편. 고대 바빌로니아와 함무라비 왕
7편. 함무라비 법전과 고대 근동의 법
8편. 고대 근동의 창조 이야기는 무엇을 말했을까
9편. 고대 근동의 홍수 이야기와 창세기
10편. 지구라트와 바벨탑 이야기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11편. 고대 이집트 문명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12편. 가나안은 어떤 지역이었을까
13편. 아브라함 시대의 고대 근동은 어떤 세계였을까
14편. 족장들은 어떤 길을 따라 이동했을까


6편을 시작하며

5편에서는 우르가 교역과 신전, 왕권과 행정을 바탕으로 성장한 메소포타미아의 대표적인 도시였다는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르 제3왕조는 한때 남부 메소포타미아를 다시 통합했지만, 강력한 왕조도 영원히 지속되지는 못했습니다.

우르 제3왕조가 무너진 뒤 메소포타미아는 다시 여러 도시와 왕국으로 나뉘었습니다. 이신과 라르사, 에슈눈나, 마리, 아시리아 등 여러 세력이 서로 경쟁했습니다.

이 시기에 처음에는 그리 크지 않았던 한 도시가 점차 힘을 키우기 시작합니다. 바로 바빌론입니다.

바빌론을 메소포타미아의 대표 도시로 만든 인물은 함무라비 왕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거대한 제국을 물려받은 왕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경쟁 세력 사이에서 외교와 전쟁을 함께 활용하며 바빌론의 세력을 넓혔고, 마침내 메소포타미아의 넓은 지역을 하나의 왕국 아래 묶었습니다.

함무라비는 흔히 법전으로만 기억됩니다. 그러나 그는 먼저 바빌론을 강한 정치 중심지로 만든 왕이었습니다. 6편에서는 바빌론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함무라비는 어떤 시대에 통치했는지, 그리고 그의 왕국이 고대 근동에 어떤 의미를 남겼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바빌론은 처음부터 거대한 도시가 아니었다

바빌론은 유프라테스강 주변, 메소포타미아 중부에 자리한 도시였습니다. 오늘날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 남쪽 지역과 연결되는 곳입니다.

바빌론은 우루크나 우르, 니푸르처럼 수메르 시대부터 가장 큰 명성을 누린 도시 가운데 하나는 아니었습니다. 초기의 바빌론은 여러 도시국가 가운데 하나였고, 주변에는 더 강력한 경쟁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빌론은 지리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남부 수메르 지역과 북부 메소포타미아를 연결할 수 있었고, 유프라테스강과 운하를 통해 사람과 물품이 이동하는 길목에 자리했습니다.

도시는 좋은 위치만으로 성장하지 않습니다. 농업 생산물과 교역, 군사력과 행정, 왕의 능력과 주변 정세가 함께 맞아야 합니다. 바빌론은 바로 이러한 조건 속에서 점차 세력을 키웠습니다.

기원전 19세기 무렵, 아모리인 계통의 왕들이 바빌론을 다스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모리인은 메소포타미아 서쪽 지역과 시리아·유프라테스강 상류 주변에 널리 퍼져 있던 셈어계 집단이었습니다.

이들은 메소포타미아 문명 밖에서 갑자기 들어와 모든 것을 바꾼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아모리계 통치자들은 이미 메소포타미아의 도시와 행정, 쐐기문자와 종교 전통 속으로 들어와 있었습니다. 바빌론의 왕들은 수메르와 아카드의 오래된 문명 유산을 받아들이며 자신들의 왕국을 발전시켰습니다.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란 무엇일까

함무라비가 통치하던 시대는 흔히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라고 불립니다.

이 시기는 대체로 기원전 2000년대 초부터 기원전 1595년까지 이어진 바빌론 제1왕조의 시대를 가리킵니다. 우르 제3왕조가 무너진 뒤, 여러 도시국가와 왕국이 경쟁하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의 메소포타미아는 하나의 통일된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남부에는 이신과 라르사 같은 도시가 있었고, 동쪽에는 에슈눈나가 힘을 가졌습니다. 북쪽과 북서쪽에는 아시리아와 마리 같은 중요한 도시국가가 있었습니다.

각 왕은 자신이 신의 선택을 받았고, 도시의 질서와 정의를 세운 통치자라고 주장했습니다. 왕들은 신전을 건축하고 수로를 정비했으며, 세금과 교역, 군사력을 바탕으로 경쟁했습니다.

바빌론도 처음에는 이 복잡한 경쟁 속에 있던 한 도시였습니다. 함무라비가 왕위에 올랐을 때에도 바빌론은 메소포타미아 전체를 지배하는 가장 강한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이 점이 함무라비의 통치를 더 흥미롭게 만듭니다. 그는 이미 완성된 제국을 이어받은 사람이 아니라, 여러 강국 사이에서 바빌론을 중심으로 새로운 질서를 만든 왕이었습니다.

함무라비는 어떤 왕이었을까

함무라비는 대체로 기원전 1792년부터 1750년까지 바빌론을 통치한 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바빌론 제1왕조의 여섯 번째 왕이었습니다. 즉, 바빌론 왕국은 함무라비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함무라비 시대에 가장 큰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함무라비는 약 42년 동안 통치했습니다. 고대의 왕에게 긴 통치 기간은 매우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전쟁과 반란, 가뭄과 홍수, 주변국의 침략이 반복되는 시대에 오랫동안 왕위를 유지한다는 것은 상당한 정치적 능력이 필요했음을 뜻합니다.

그는 단순히 전쟁을 잘하는 정복왕만은 아니었습니다. 함무라비의 편지와 비문, 행정 기록은 그가 수로와 농업, 세금과 행정, 신전과 재판에 관심을 가졌음을 보여 줍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좋은 왕은 전쟁에서 이기는 사람만을 뜻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백성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물길을 관리하고, 신전을 보수하며, 재판을 통해 질서를 세우고, 도시를 외부의 공격에서 지켜야 했습니다.

함무라비는 자신을 그러한 왕으로 보이게 했습니다. 그는 강한 군주인 동시에 도시와 백성의 질서를 세우는 보호자라는 모습을 강조했습니다.

함무라비는 어떻게 바빌론을 강하게 만들었을까

함무라비가 왕위에 올랐을 당시, 바빌론 주변에는 강력한 경쟁 세력이 많았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모든 나라와 전쟁을 벌이지 않았습니다.

고대 근동의 왕들은 전쟁뿐 아니라 동맹과 조약, 혼인 관계와 외교문서를 통해 경쟁했습니다.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맹이 될 수 있었고, 한 나라를 물리치기 위해 다른 나라와 손을 잡기도 했습니다.

함무라비도 처음에는 주변 세력과 관계를 맺으며 바빌론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그는 도시의 성벽과 신전, 수로를 정비하고, 바빌론 내부의 행정과 군사력을 강화했습니다.

이후 정세가 바뀌자 함무라비는 군사행동을 통해 영토를 넓혔습니다. 남부의 라르사를 정복하고, 동쪽의 에슈눈나와 북서쪽의 마리 등 주요 세력을 차례로 제압했습니다.

이 과정은 한 번의 전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동맹과 갈등, 전쟁과 통합이 반복되었습니다. 함무라비는 상대 세력의 약점을 이용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때를 기다리며 바빌론의 지배권을 넓혔습니다.

그 결과 바빌론은 남부 메소포타미아뿐 아니라 북쪽과 동쪽의 넓은 지역에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왕국이 되었습니다.

바빌론 왕국은 무엇을 통치했을까

함무라비가 영토를 넓혔다는 말은 도시를 몇 개 더 얻었다는 뜻만이 아닙니다.

그가 지배하게 된 지역에는 농경지와 운하, 마을과 도시, 신전과 궁전, 시장과 창고가 있었습니다. 왕국은 이 모든 것을 조직해야 했습니다.

농업은 메소포타미아 경제의 기반이었습니다. 강물과 운하를 관리하지 못하면 농경지는 말라 버리거나 홍수 피해를 입을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왕은 수로와 제방을 정비하고, 물을 공정하게 나누며, 농업 생산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도시는 곡물과 가축, 직물과 금속, 목재와 돌을 모으고 나누는 중심지였습니다. 상인들은 강과 육로를 통해 물품을 옮겼고, 서기관들은 계약과 세금, 배급과 운송을 기록했습니다.

왕국을 통치한다는 것은 군대를 보내 성을 점령하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정복한 도시가 계속 곡물을 생산하고, 세금을 내며, 교역로가 유지되고, 반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관리하는 일이 더 중요했습니다.

함무라비 시대의 바빌론은 수메르와 아카드 시대부터 이어진 문자와 행정의 전통을 바탕으로 움직였습니다. 바빌론은 새로운 문명을 처음부터 만든 도시가 아니라, 이전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계승하고 더 넓게 통합한 도시였습니다.

마르둑은 어떻게 바빌론의 신이 되었을까

바빌론이 성장하면서 도시의 수호신 마르둑의 위상도 높아졌습니다.

메소포타미아의 각 도시는 자신들의 수호신을 중심으로 정체성을 만들었습니다. 우르에는 달의 신 난나가 있었고, 니푸르에는 엔릴이 있었으며, 우루크에는 이난나와 안이 중요한 신으로 섬겨졌습니다.

바빌론의 수호신은 마르둑이었습니다.

바빌론이 작은 도시였을 때 마르둑은 메소포타미아 전체에서 가장 높은 위치의 신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바빌론이 정치적 중심지로 성장하면서 마르둑의 중요성도 커졌습니다.

함무라비와 그의 후계자들은 바빌론이 강한 도시가 된 것을 마르둑의 보호와 연결했습니다. 왕은 마르둑을 섬기고, 마르둑은 왕에게 승리와 질서를 주는 존재로 표현되었습니다.

후대 바빌로니아 시대에는 마르둑이 메소포타미아 신들 가운데 가장 높은 신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창조 서사시 「에누마 엘리시」에서도 마르둑은 혼돈을 물리치고 질서를 세우는 중심 신으로 나타납니다.

도시의 정치적 성장과 수호신의 종교적 위상은 서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바빌론이 강해질수록 마르둑도 더 중요한 신이 되었고, 마르둑의 위상이 높아질수록 바빌론은 신들이 선택한 도시처럼 이해되었습니다.

함무라비 법전은 왜 유명할까

함무라비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함무라비 법전입니다.

함무라비 법전은 검은 돌기둥에 새겨진 긴 법률문서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비석의 윗부분에는 함무라비가 태양과 정의의 신 샤마시 앞에 서 있는 장면이 새겨져 있습니다. 왕이 법을 자신의 마음대로 만든 것이 아니라, 신에게서 정의와 통치의 권위를 받았다는 모습을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비석 아래에는 재산과 계약, 빚과 상거래, 농업과 노동, 결혼과 상속, 폭력과 상해에 관한 많은 규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함무라비 법전을 단순히 ‘세계 최초의 법전’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수메르와 우르 제3왕조 시대에도 이미 우르남무 법전 같은 더 이른 법 자료가 존재했습니다.

함무라비 법전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가장 오래된 법전이기 때문이 아니라, 매우 많은 조항을 남겼고 왕이 정의를 세우는 통치자라는 생각을 뚜렷하게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법전의 구체적인 내용과 고대 근동의 법 전통, 그리고 모세 율법과 비교할 때 어떤 점을 조심해야 하는지는 다음 7편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함무라비는 정의로운 왕이었을까

함무라비 법전의 서문과 맺음말에서 왕은 자신을 약한 사람을 보호하고,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억압하지 못하게 하는 통치자로 묘사합니다.

이런 표현은 왕이 단순한 정복자가 아니라 정의를 세우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고대 근동의 이상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함무라비 법전의 실제 조항을 보면, 오늘날의 평등한 법 개념과는 다릅니다. 사람의 신분과 성별, 사회적 위치에 따라 처벌과 배상이 달라지는 규정이 있습니다. 자유인과 종속된 사람, 상류층과 평민이 같은 방식으로 다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함무라비 법전을 현대의 인권이나 민주주의 기준으로 칭찬하거나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먼저 이 법전이 어떤 사회에서 나왔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 시대의 법은 모든 사람이 완전히 동등하다는 원칙보다, 계층화된 도시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재산과 계약, 가족과 노동의 관계를 조정하는 데 더 큰 관심을 두었습니다.

그럼에도 왕이 법과 재판, 약자 보호를 자신의 중요한 임무로 말해야 했다는 사실은 의미가 있습니다. 고대의 왕권도 힘만으로 정당화될 수는 없었습니다. 왕은 질서와 정의를 세우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주장해야 했습니다.

바빌로니아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의 사람들은 왕과 전쟁만으로 살아가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농업과 목축, 수공업과 교역에 종사했습니다. 농민은 보리와 대추야자 같은 작물을 재배했고, 목축민은 양과 염소를 길렀습니다. 장인은 토기와 직물, 금속도구와 가구, 장신구를 만들었습니다.

상인은 곡물과 양모, 기름과 금속, 목재와 돌을 사고팔았습니다. 서기관은 계약서와 편지, 세금과 재판 기록을 점토판에 썼습니다.

가족은 사회의 중요한 단위였습니다. 결혼과 이혼, 상속과 입양, 빚과 재산은 모두 법과 계약의 대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집과 토지, 가축과 물품을 소유하거나 빌렸고, 때로는 빚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점토판은 왕의 업적만 남기지 않았습니다. 상인이 쓴 편지와 학교의 연습문, 재판 기록과 계약서도 남겼습니다. 우리는 이런 기록을 통해 고대인들의 일상적인 걱정과 계산, 가족과 경제생활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바빌로니아 문명은 왕과 신전만의 문명이 아니었습니다. 농민과 상인, 장인과 서기관, 가족과 마을이 함께 움직인 도시문명이었습니다.

함무라비 이후 바빌론은 어떻게 되었을까

함무라비가 세운 왕국은 그의 생전에는 매우 강력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은 뒤에는 넓은 영토를 유지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후계자들은 함무라비가 통합한 모든 지역을 안정적으로 지배하지 못했습니다. 여러 도시와 지역은 다시 독자적인 세력을 키웠고, 북쪽과 동쪽, 서쪽의 압력도 계속되었습니다.

기원전 1595년 무렵, 히타이트의 군대가 메소포타미아까지 내려와 바빌론을 공격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바빌론 제1왕조는 끝났습니다.

그러나 바빌론이라는 도시의 역사가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후 카시트 왕조가 바빌론을 지배했고, 바빌론은 오랫동안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중요한 종교·문화 중심지로 남았습니다.

수백 년 뒤 신바빌로니아 제국 시대에는 느부갓네살 2세가 바빌론을 다시 거대한 제국의 수도로 만들었습니다. 이때의 바빌론은 유다 왕국의 멸망과 바빌론 포로라는 성경의 역사와 직접 연결됩니다.

함무라비의 바빌론과 느부갓네살의 바빌론은 같은 도시이지만, 서로 다른 시대의 바빌론입니다. 이 차이를 구분하는 것은 성경과 고대 근동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의 세계와 고대 바빌로니아

함무라비의 이름은 성경에 직접 나오지 않습니다. 또한 함무라비 시대의 고대 바빌로니아는 유다 왕국을 멸망시킨 신바빌로니아 제국보다 훨씬 앞선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고대 바빌로니아는 성경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배경입니다.

성경이 기록된 고대 근동에는 오래전부터 도시와 왕국, 신전과 법, 교역과 기록의 전통이 있었습니다. 함무라비 시대의 바빌론은 그러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매우 높은 수준의 행정과 정치, 법률문화를 이루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특히 창세기와 출애굽기, 신명기와 같은 성경의 법과 이야기를 읽을 때, 이스라엘이 고대 근동의 다른 민족들과 전혀 접촉하지 않은 상태에서 살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주변 세계와 비슷한 역사적 환경 속에서 기록되었지만, 하나님과 인간, 정의와 언약, 왕과 백성에 대해 독특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고대 근동의 배경을 아는 일은 성경을 다른 문헌과 같다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어떤 세계를 향해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더 정확하게 이해하게 합니다.

작은 도시 바빌론이 남긴 유산

바빌론은 처음부터 메소포타미아의 중심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좋은 위치와 성장하는 행정력, 그리고 함무라비의 정치적 능력을 바탕으로 여러 경쟁 도시를 넘어섰습니다.

함무라비는 외교와 전쟁을 통해 바빌론의 영토를 넓혔고, 수로와 농업, 행정과 재판을 통해 왕국의 질서를 세우려 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단순한 정복자가 아니라 정의를 실현하는 왕으로 제시했습니다.

함무라비 법전은 그 통치 이념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자료입니다. 법전은 고대 바빌로니아 사회가 재산과 계약, 가족과 노동, 폭력과 처벌을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알려 줍니다.

바빌론은 이후에도 여러 왕조와 제국의 수도 또는 중심지로 계속 살아남았습니다. 한 왕조는 사라질 수 있어도, 교역로와 신전, 기록과 전통을 가진 도시는 오랫동안 역사의 중심으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 7편에서는 함무라비 법전과 고대 근동의 법을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함무라비 법전은 어떤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르남무 법전과 모세 율법을 비교할 때 무엇을 구분해야 할까요.


참고 자료

4. 성경과 함께한 세계사 4. 성경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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