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영어 이전의 영국에는 누가 살았을까

 

3편. 영어 이전의 영국에는 누가 살았을까

「영어의 탄생과 고대 영어」 전체 시리즈

1편. 영어는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2편. 영어는 어떤 언어 계통에 속할까

3편. 영어 이전의 영국에는 누가 살았을까

4편. 앵글족·색슨족·주트족은 왜 영국으로 왔을까

5편. 잉글랜드와 잉글리시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

6편. 앵글로색슨 왕국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7편. 고대 영어는 오늘날 영어와 얼마나 달랐을까

8편. 고대 영어의 방언은 어떻게 나뉘었을까

9편. 고대 영어의 기본 어휘는 어디에서 왔을까

10편. 기독교는 고대 영어를 어떻게 바꾸었을까

11편. 고대 영어는 어떻게 기록되었을까

12편. 알프레드 대왕은 영어를 어떻게 지켰을까

13편. 『베오울프』는 왜 영어사에서 중요한가

14편. 노르만 정복 직전의 고대 영어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오늘날 영국의 중심 언어는 영어이다.

그러나 영어는 처음부터 브리튼섬에서 사용된 언어가 아니었다.

영어의 조상이 된 서게르만계 언어가 브리튼섬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은 로마의 지배가 끝난 뒤인 5세기 무렵이었다. 그보다 훨씬 전부터 브리튼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으며, 그들은 영어와 다른 언어를 사용했다.

그렇다면 영어가 들어오기 전의 영국에는 누가 살고 있었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선사시대의 브리튼섬에서 시작해 켈트계 브리튼인, 로마의 정복과 로마 철수까지 살펴보아야 한다.


영국이라는 나라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먼저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영국이나 잉글랜드라는 나라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오늘날 영국이 자리 잡은 섬은 일반적으로 그레이트브리튼섬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고대의 이 섬에는 하나의 통일된 국가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여러 지역 집단과 부족이 서로 다른 정치적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었다.

잉글랜드라는 이름도 아직 없었고, 잉글리시라는 언어도 존재하지 않았다.

잉글랜드와 잉글리시라는 이름은 훗날 브리튼섬으로 건너온 게르만계 앵글족의 이름에서 발전했다.

따라서 영어 이전의 영국을 이야기할 때는 오늘날의 국경과 국가 개념을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브리튼섬에는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

브리튼섬에는 영어가 등장하기 수천 년 전부터 사람들이 살았다.

구석기시대의 수렵·채집 집단에서 시작해 신석기시대의 농경민,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의 여러 공동체가 차례로 등장했다.

영국의 대표적인 선사 유적인 스톤헨지도 이러한 긴 역사를 보여준다. 스톤헨지가 자리 잡은 지역에서는 약 9,000년 전부터 사람들의 활동이 시작되었으며, 오늘날 볼 수 있는 거대한 석조 구조물은 여러 세대에 걸쳐 만들어졌다.

따라서 영어 이전의 브리튼섬 역사를 켈트인부터 시작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켈트계 언어와 문화가 나타나기 전에도 이미 다양한 사람들이 브리튼섬에 정착하여 농사를 짓고 마을과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다만 이 시기에는 문자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자신들을 무엇이라고 불렀으며 어떤 언어를 사용했는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철기시대 브리튼인

로마가 브리튼섬을 정복하기 직전에는 여러 철기시대 공동체가 섬 곳곳에 살고 있었다.

로마인들은 이들을 대체로 브리튼인, 즉 Britons라고 불렀다.

브리튼인들은 하나의 통일된 민족이나 국가를 이루고 있지 않았다. 여러 부족과 지역 공동체로 나뉘어 있었으며 각 집단에는 지도자와 독자적인 세력권이 있었다.

이들은 농업과 목축을 중심으로 생활했고, 언덕 위에 방어 시설을 갖춘 취락을 건설하기도 했다. 철제 도구와 무기를 사용했고, 유럽 대륙과 물품을 교역했다.

로마 정복 이전의 브리튼섬에도 규모가 큰 정착지는 있었지만, 로마 시대와 같은 계획도시와 행정 중심지는 아직 본격적으로 발달하지 않았다.

브리튼인들은 단순하거나 미개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농업 기술과 사회 조직, 종교, 예술과 교역망을 가진 여러 공동체였다.


이들을 모두 켈트인이라고 불러도 될까

영어 역사책에서는 로마 정복 이전의 브리튼섬 주민을 흔히 켈트인이라고 부른다.

이 표현은 이해하기 쉽지만 주의해서 사용해야 한다.

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인이 브리튼섬의 모든 주민을 하나의 켈트 민족으로 분류했던 것은 아니다. 오늘날 고고학 연구에서도 철기시대 브리튼섬의 주민들은 하나의 단일한 민족이라기보다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지역적으로 구별되는 여러 공동체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당시 사람들을 모두 하나의 통일된 켈트 민족으로 보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설명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켈트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이유는 브리튼섬 주민들의 언어와 문화가 유럽의 넓은 켈트 문화권과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장식 예술, 종교적 전통과 언어에는 유럽 대륙의 켈트 문화와 공유되는 특징이 나타났다. 영국박물관도 당시 브리튼섬과 유럽 대륙의 여러 공동체가 서로 다른 지역 문화를 가지면서도 예술과 물질문화에서 연결되어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표현하는 것이 비교적 정확하다.

로마 정복 이전의 브리튼섬에는 켈트계 언어와 문화를 가진 여러 브리튼인 공동체가 살고 있었다.


브리튼인들은 어떤 언어를 사용했을까

철기시대 브리튼인들은 주로 브리튼계 켈트어를 사용했다.

영어로는 보통 Brittonic 또는 Brythonic이라고 부른다.

브리튼계 켈트어는 영어와 같은 게르만어가 아니라 인도유럽어족의 켈트어파에 속하는 언어였다.

영어와 브리튼계 켈트어의 관계를 간단히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영어
인도유럽어족 → 게르만어파 → 서게르만어군

브리튼계 켈트어
인도유럽어족 → 켈트어파 → 브리튼어군

두 언어는 아주 먼 인도유럽어족의 조상을 공유하지만 서로 다른 갈래에서 발전했다.

브리튼계 켈트어에서는 훗날 웨일스어, 콘월어와 브르타뉴어 등이 발전했다.

오늘날 웨일스에서 사용되는 웨일스어는 영어가 들어오기 전 브리튼섬 언어의 계통을 이어받은 대표적인 언어이다.


로마는 브리튼섬을 정복했다

기원후 43년,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는 브리튼섬에 대규모 군대를 보냈다.

로마군은 이후 수십 년 동안 오늘날의 잉글랜드와 웨일스 대부분을 장악하고 북쪽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로마는 정복한 지역을 브리타니아라는 속주로 편입했다.

그러나 로마가 브리튼섬 전체를 완전히 지배한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스코틀랜드에 해당하는 북부 지역에서는 로마에 대한 저항이 계속되었다. 로마는 북쪽 경계를 방어하기 위해 2세기에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건설했다. 이 방벽은 약 300년 동안 로마 제국 북서부의 중요한 국경선 역할을 했다.

로마의 지배는 단순히 군대가 들어온 사건에 그치지 않았다.

도로와 도시가 건설되었고, 로마식 행정과 법률, 화폐, 건축과 생활문화가 브리튼섬에 들어왔다.


브리튼인들은 로마인이 되었을까

로마는 브리튼섬을 거의 400년 동안 지배했다.

이 긴 기간에 브리튼인의 사회와 생활은 크게 변화했다.

일부 지역의 지도층은 로마식 이름과 생활양식을 받아들였다. 도시에 살며 라틴어를 사용하고 로마의 행정과 경제 체제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그러나 기존의 브리튼인이 완전히 사라지고 로마인으로 교체된 것은 아니다.

브리튼섬의 철기시대 사회와 로마의 법률, 행정, 화폐, 건축과 종교가 결합하면서 독특한 로마계 브리튼 문화, 즉 로마노브리튼 문화가 형성되었다.

이 시대의 주민들을 로마계 브리튼인, 영어로는 Romano-Britons라고 부른다.

이들은 로마 제국의 일부로 살아갔지만 동시에 브리튼 지역의 언어와 전통도 유지했다.


로마 시대에는 어떤 언어를 사용했을까

로마가 브리튼섬을 정복하면서 라틴어가 들어왔다.

라틴어는 군대, 행정, 법률, 기록과 도시 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로마 관리와 군인, 상인과 교육받은 일부 주민은 라틴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브리튼계 켈트어가 곧바로 사라진 것은 아니다.

특히 농촌과 일상생활에서는 기존의 브리튼계 언어가 널리 사용되었다. 로마 문화가 브리튼섬에 큰 영향을 주었지만, 라틴어는 토착 주민의 켈트계 언어를 완전히 대체하지 못했다. 브리튼계 켈트어는 로마의 지배가 끝난 뒤에도 계속 사용되었다.

따라서 로마 시대의 브리튼섬은 하나의 언어만 사용하는 사회가 아니었다.

행정과 군대, 도시와 기록에서는 라틴어가 사용되었고,
많은 주민의 일상생활에서는 브리튼계 켈트어가 계속 사용되었다.

여기에 로마 제국 각지에서 온 군인과 상인, 이주민의 언어도 함께 존재했다.

로마 시대의 브리튼섬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사람들이 오가는 사회였다.


로마의 지배는 어떻게 끝났을까

4세기 말부터 로마 제국은 정치적 혼란과 외부 침입, 군사적 위기를 겪었다.

로마는 넓은 제국의 국경을 방어하기 위해 병력을 재배치해야 했다. 브리튼섬에 주둔하던 로마군도 점차 철수했다.

5세기 초인 약 410년 무렵, 브리튼섬에 대한 로마의 직접적인 통치는 사실상 끝났다. 영국의 초기 중세는 일반적으로 로마 지배가 끝난 약 410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본다.

그러나 로마인이 떠난 다음 날부터 로마 문화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브리튼섬에는 여전히 로마식 생활과 기독교 신앙, 라틴어 지식과 행정의 흔적을 가진 로마계 브리튼인들이 살고 있었다.

문제는 이들을 보호하고 통치하던 로마의 군대와 중앙 권력이 사라졌다는 점이었다.


로마가 떠난 뒤 브리튼섬은 혼란에 빠졌다

로마의 통치가 끝난 뒤 브리튼섬에는 섬 전체를 지배하는 강력한 정부가 존재하지 않았다.

각 지역의 지도자들이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했고, 지역 공동체들은 외부의 공격에 스스로 대응해야 했다.

북쪽에서는 픽트족이 위협했고, 서쪽에서는 아일랜드계 집단의 이동과 공격이 이어졌다. 북해와 영국해협을 건너오는 게르만계 집단의 활동도 증가했다.

당시 브리튼섬 주민은 하나의 집단으로 통일되어 있지 않았다.

로마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사람들도 있었고, 전통적인 브리튼계 생활방식을 유지한 지역도 있었다. 북부와 서부에는 로마의 직접 지배가 약하거나 미치지 않았던 여러 집단도 존재했다.

따라서 로마가 떠난 직후의 브리튼섬은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함께 존재하는 공간이었다.

  • 브리튼계 켈트어를 사용하는 주민

  • 로마 문화의 영향을 받은 로마계 브리튼인

  • 북부의 픽트족

  • 아일랜드에서 이동해 온 집단

  • 대륙에서 들어오기 시작한 게르만계 사람들

이처럼 여러 세력과 문화가 뒤섞인 상황에서 브리튼섬의 정치 질서는 크게 흔들렸다.


브리튼인은 모두 사라졌을까

앵글족과 색슨족이 브리튼섬에 들어온 뒤 기존의 브리튼인이 모두 사라졌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 역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브리튼인 일부는 서쪽의 웨일스와 콘월 지역으로 이동하거나 그곳에서 세력을 유지했다. 일부는 북부와 남서부의 독립적인 왕국을 형성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게르만계 정착민이 세운 사회 안에 남아 함께 살아갔을 것이다.

일부 브리튼인은 바다를 건너 오늘날 프랑스 북서부로 이동했다. 이들이 정착한 지역은 훗날 브르타뉴라고 불리게 되었다. 브르타뉴에서 사용되는 브르타뉴어도 브리튼계 켈트어의 전통을 이어받은 언어이다.

브리튼인은 정복과 이동, 혼합을 거치면서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날의 웨일스어와 콘월 지역의 언어·문화, 브르타뉴의 언어는 영어 이전 브리튼섬 주민들의 역사가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어는 비어 있는 땅에 들어온 것이 아니다

영어의 조상이 된 서게르만계 언어는 아무도 살지 않는 빈 땅에 들어온 것이 아니다.

브리튼섬에는 이미 오랜 역사를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농사를 짓고 마을을 만들었으며, 자신들만의 언어와 종교, 문화와 정치 공동체를 가지고 있었다.

로마의 정복 이후에는 라틴어와 로마 문화, 기독교가 더해졌다. 그 결과 로마 지배가 끝날 무렵의 브리튼섬에는 켈트계 전통과 로마 문화가 결합한 로마계 브리튼 사회가 존재했다.

그곳으로 앵글족, 색슨족과 주트족을 비롯한 게르만계 사람들이 들어왔다.

영어의 탄생은 단순히 게르만계 사람들이 새로운 땅에 도착한 사건이 아니었다.

브리튼계 켈트어를 사용하는 기존 주민과
서게르만계 언어를 사용하는 새로운 이주민이
충돌하고 공존하며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영어의 역사는 바로 이 만남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다음 글에서는 앵글족·색슨족·주트족이 왜 유럽 대륙을 떠나 브리튼섬으로 건너왔는지 살펴본다.


다음 글

4편. 앵글족·색슨족·주트족은 왜 영국으로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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