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 잉글랜드와 잉글리시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
5편. 잉글랜드와 잉글리시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
「영어의 탄생과 고대 영어」 전체 시리즈
1편. 영어는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2편. 영어는 어떤 언어 계통에 속할까
3편. 영어 이전의 영국에는 누가 살았을까
4편. 앵글족·색슨족·주트족은 왜 영국으로 왔을까
5편. 잉글랜드와 잉글리시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
6편. 앵글로색슨 왕국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7편. 고대 영어는 오늘날 영어와 얼마나 달랐을까
8편. 고대 영어의 방언은 어떻게 나뉘었을까
9편. 고대 영어의 기본 어휘는 어디에서 왔을까
10편. 기독교는 고대 영어를 어떻게 바꾸었을까
11편. 고대 영어는 어떻게 기록되었을까
12편. 알프레드 대왕은 영어를 어떻게 지켰을까
13편. 『베오울프』는 왜 영어사에서 중요한가
14편. 노르만 정복 직전의 고대 영어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왜 영국은 색슨랜드가 아니라 잉글랜드가 되었을까
5세기 이후 브리튼섬에는 앵글족·색슨족·주트족을 비롯한 여러 게르만계 집단이 들어왔습니다.
이들은 하나의 통일된 민족이나 국가를 이루어 영국에 도착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왔고, 서로 다른 지도자를 따랐으며, 영국에 정착한 뒤에도 여러 왕국으로 나뉘어 경쟁했습니다.
앵글족은 주로 영국의 동부와 북부에 정착했고, 색슨족은 남부에 정착했습니다. 주트족은 켄트와 와이트섬을 중심으로 자리 잡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 가운데 색슨족은 매우 강력한 세력을 형성했습니다.
서식스와 에식스, 웨식스라는 이름에는 지금도 색슨족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웨식스는 훗날 바이킹의 침입에 맞서 살아남았고, 영국의 정치적 통일을 주도했습니다.
그런데도 나라의 이름은 색슨족의 이름을 따른 ‘색슨랜드’가 되지 않았습니다.
앵글족의 이름을 따라 England, 즉 잉글랜드가 되었습니다.
이들이 사용한 언어 역시 색슨어가 아니라 English, 즉 잉글리시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왜 앵글족의 이름이 여러 집단과 왕국 전체를 대표하게 되었을까요?
그 답을 찾으려면 민족의 이름과 언어의 이름, 국가의 이름이 형성된 과정을 차례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앵글족의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
앵글족은 라틴어 기록에서 주로 Angli라고 불렸습니다.
고대 영어에서는 이들을 Angle 또는 Engle라고 불렀습니다.
앵글족의 원래 거주지는 오늘날 독일 북부와 덴마크 남부 사이의 슐레스비히 지역에 있던 앙겔른반도와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앵글족이라는 이름과 앙겔른이라는 지명 가운데 어느 쪽이 먼저 생겼는지, 그 이름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앙겔른반도의 굽은 해안선이나 땅의 모양과 관련되었다는 설명도 있고, 낚싯바늘을 뜻하는 게르만계 어근과 관련되었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모두 확정된 사실이라기보다 가능한 어원에 가깝습니다.
영어사에서 더 중요한 것은 이 이름이 영국으로 이동한 특정 집단을 가리키는 데 그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서 영국에 정착한 여러 게르만계 주민 전체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확장되었다는 사실입니다.
Angle은 어떻게 Engle가 되었을까
라틴어에서는 앵글족을 Angli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고대 영어에서는 이 이름이 Angle 또는 Engle의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언어는 시간이 지나면서 발음이 달라집니다.
특히 뒤따르는 소리의 영향으로 모음의 발음이 변하거나,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철자가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 결과 Angle과 관련된 이름이 고대 영어에서 Engle로 나타났고, 이 형태가 오늘날의 England와 English로 이어졌습니다.
고대 영어의 Engle는 앵글족을 가리키는 복수 명사였습니다.
여기에 ‘땅’을 뜻하는 land가 결합하면 ‘앵글족의 땅’이라는 표현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Engla land입니다.
Engla land는 ‘앵글족의 땅’이라는 뜻이었다
오늘날의 England는 고대 영어 Engla land에서 나왔습니다.
Engla는 Engle의 소유격 복수형으로, ‘앵글족들의’ 또는 ‘앵글족의’라는 뜻입니다.
land는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땅’ 또는 ‘나라’를 뜻했습니다.
따라서 Engla land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Engla land = 앵글족의 땅
고대 영어 사전에는 Engla land가 ‘앵글족 또는 잉글리시 사람들이 차지한 땅’, 즉 England를 뜻하는 표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제 고대 영어 자료에는 왕이 ‘Engla land의 통치자’라고 불리거나, 특정 인물이 Engla land로 왔다는 문장이 나타납니다.
처음부터 이 말이 오늘날 잉글랜드 전체를 정확히 가리켰던 것은 아닙니다.
초기의 Engla land는 앵글족이 지배하거나 거주하던 지역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될 수 있었습니다.
8세기 베다 시대에는 앵글족의 세력이 넓게 퍼져 있었기 때문에 영국의 중부와 북부를 포함하는 상당히 넓은 지역이 앵글족의 땅으로 인식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통일이 진행되면서 Engla land는 점차 여러 앵글로색슨 왕국을 포함하는 전체 국가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English는 원래 ‘앵글족의’라는 뜻이었다
나라의 이름 England와 언어의 이름 English는 같은 뿌리에서 나왔습니다.
English의 고대 영어 형태는 Englisc 또는 Ænglisc였습니다.
고대 영어의 접미사 -isc는 어떤 민족이나 지역과 관련된 형용사를 만드는 기능을 했습니다.
따라서 Englisc는 원래 다음과 같은 뜻을 가졌습니다.
앵글족의
앵글족과 관련된
앵글족이 사용하는 언어
오늘날 영어의 -ish도 이 고대 영어의 -isc에서 발전한 형태입니다.
English뿐 아니라 British, Scottish, Danish와 같은 단어의 -ish도 같은 계통의 접미사입니다.
고대 영어 사전에서 Englisc는 ‘English’ 또는 ‘앵글족의’라는 뜻으로 설명됩니다. 고대 문헌에서는 ‘이 섬에는 Englisc와 Brytisc를 비롯한 여러 언어가 있다’거나, 어떤 표현이 ‘Englisc로는 무엇이다’라는 용례가 나타납니다.
중요한 것은 Englisc가 시간이 지나면서 앵글족만의 언어를 뜻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색슨족과 주트족의 후손들이 사용하는 언어까지 모두 Englisc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서로 다른 방언이 하나의 Englisc가 되었다
앵글족·색슨족·주트족이 사용한 언어는 서로 완전히 동일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영국으로 가져온 언어는 서로 가까운 서게르만어 계통의 여러 방언이었습니다.
영국에 정착한 뒤에도 지역별 차이는 계속 남았습니다.
고대 영어는 크게 다음과 같은 방언으로 나뉘었습니다.
노섬브리아 방언
머시아 방언
웨스트색슨 방언
켄트 방언
노섬브리아 방언과 머시아 방언은 앵글족의 지역과 관련되어 있었고, 웨스트색슨 방언은 색슨족의 지역과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켄트 방언은 전통적으로 주트족의 정착 지역과 연결됩니다.
이처럼 여러 방언이 존재했는데도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 전체는 점차 Englisc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였습니다.
Englisc라는 말은 특정 방언의 이름이 아니라, 브리튼어·아일랜드어·픽트어·라틴어와 구별되는 게르만계 주민들의 언어 전체를 가리키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영어는 처음부터 완전히 통일된 하나의 언어가 아니었습니다.
서로 가까운 여러 방언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언어를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하면서 영어라는 언어적 정체성이 형성되었습니다.
베다는 여러 집단을 하나의 ‘잉글리시 민족’으로 묶었다
앵글족의 이름이 전체를 대표하게 된 과정에서 중요한 인물이 8세기의 역사가 베다입니다.
베다는 서기 731년경 라틴어로 『영국 교회사』를 완성했습니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라틴어로 Historia ecclesiastica gentis Anglorum입니다.
이를 풀이하면 ‘앵글족 또는 잉글리시 민족의 교회사’라는 뜻입니다.
베다는 앵글족·색슨족·주트족이 서로 다른 기원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들이 영국으로 들어온 과정과 각 집단의 정착 지역을 구분하여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영국에 정착하여 기독교를 받아들인 여러 게르만계 왕국의 주민들을 더 큰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 gens Anglorum, 즉 ‘잉글리시 민족’으로 표현했습니다.
베다가 사용한 라틴어 Angli는 문맥에 따라 좁은 의미의 앵글족을 가리키기도 하고, 넓은 의미에서 영국의 게르만계 주민 전체를 가리키기도 했습니다.
베다 시대에는 아직 통일된 잉글랜드 왕국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노섬브리아, 머시아, 웨식스, 켄트, 이스트앵글리아 등 여러 왕국이 서로 경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베다는 정치적으로 분열된 이들을 기독교 신앙과 공통된 역사로 연결된 하나의 민족으로 서술했습니다.
정치적 통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먼저 역사와 종교를 통해 하나의 잉글리시 민족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기독교는 공동의 이름을 확산시켰다
앵글족의 이름이 여러 집단 전체를 대표하게 된 데에는 기독교의 역할도 중요했습니다.
앵글족·색슨족·주트족은 영국에 정착한 뒤 서로 다른 왕국을 세웠습니다.
이들 왕국은 전쟁을 벌이고 경쟁했으며, 각자의 왕과 귀족을 중심으로 움직였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여러 왕국은 하나의 교회 조직 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주교와 수도사들은 왕국의 경계를 넘어 이동했고, 수도원은 학문과 기록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라틴어로 기록된 교회사와 성인전, 편지와 연대기는 각 왕국의 사건을 더 큰 영국 교회의 역사 안에서 설명했습니다.
로마 교회 역시 앵글족의 이름을 영국에 정착한 게르만계 주민 전체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사용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이러한 교회의 언어는 베다의 저술을 통해 더욱 체계화되었습니다.
결국 Englisc라는 이름은 단순히 혈통을 구분하는 이름이 아니라, 브리튼섬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비슷한 게르만계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묶는 공동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왜 색슨족의 이름은 전체를 대표하지 못했을까
색슨족의 세력은 결코 약하지 않았습니다.
영국 남부에는 에식스·서식스·웨식스 같은 색슨계 왕국이 형성되었습니다.
특히 웨식스는 9세기 이후 바이킹의 침입에 맞서 살아남았고, 알프레드 대왕과 그의 후계자들을 통해 영국 통일을 주도했습니다.
후기 고대 영어 문헌의 상당수도 웨스트색슨 방언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정치와 문학의 중심이 웨식스로 이동했다면, 언어와 나라의 이름도 색슨족을 따라갈 수 있었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민족과 언어의 이름은 정치적 중심이 바뀐다고 쉽게 교체되지 않습니다.
베다와 교회가 이미 Angli와 Englisc라는 이름을 여러 왕국 전체를 포괄하는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바이킹의 침입이 본격화되던 9세기에는 앵글족과 색슨족의 오래된 구분보다, 이들과 데인인 또는 노르드계 바이킹을 구분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색슨족의 후손도, 앵글족의 후손도, 주트족의 후손도 바이킹과 대립하는 과정에서는 Englisc라는 하나의 집단으로 묶일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웨식스 왕들이 정치적 통일을 주도했을 때도 이미 널리 사용되던 Englisc라는 공동 명칭을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
알프레드 대왕 시대에 Englisc의 의미는 더욱 넓어졌다
9세기 후반 알프레드 대왕이 통치하던 시기는 잉글리시 정체성이 강화되는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당시 영국의 여러 왕국은 바이킹의 공격으로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노섬브리아와 이스트앵글리아를 비롯한 여러 지역이 바이킹에게 점령되었고, 웨식스는 독립을 유지한 가장 강력한 앵글로색슨 왕국이 되었습니다.
알프레드와 그의 후계자들은 웨식스만을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바이킹의 지배 아래 들어간 여러 지역의 주민들을 해방하고 통합하려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왕의 통치 대상은 단순히 서색슨족만이 아니었습니다.
앵글족·색슨족·주트족의 후손을 포함한 ‘잉글리시 사람들’ 전체가 새로운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알프레드 시대의 학문과 번역 사업에서도 라틴어와 구별되는 자국어를 Englisc라고 불렀습니다.
베다의 교회사 역시 9세기 말 또는 10세기 초에 고대 영어로 번역되었으며, 이 번역은 여러 왕국이 공유할 수 있는 역사와 정체성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Englisc는 더 이상 앵글족의 방언만을 뜻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영국의 여러 게르만계 주민이 공유하는 언어와 문화, 정치적 공동체를 가리키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잉글랜드라는 국가는 언어의 이름보다 늦게 형성되었다
‘잉글리시 사람들’과 ‘잉글리시 언어’라는 개념은 통일된 잉글랜드 왕국보다 먼저 존재했습니다.
8세기의 베다는 정치적으로 나뉜 여러 왕국의 주민들을 하나의 잉글리시 민족으로 설명했습니다.
9세기에는 바이킹의 침입에 맞서는 과정에서 Englisc라는 공동 정체성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그러나 잉글랜드라는 통일 왕국이 실질적으로 형성된 것은 10세기의 일이었습니다.
알프레드 대왕의 아들 에드워드 장형왕과 딸 애설플래드, 손자 애설스탠을 비롯한 후계자들은 바이킹이 지배하던 지역을 차례로 되찾았습니다.
927년경 애설스탠은 잉글랜드 대부분을 통합한 왕으로 평가됩니다.
다만 통일된 왕국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곧바로 England라는 국가명이 완전히 고정된 것은 아닙니다.
왕들은 자신을 ‘앵글로색슨인의 왕’, ‘잉글리시인의 왕’ 또는 ‘브리튼 전체의 왕’과 같은 여러 방식으로 표현했습니다.
Engla land가 통일 왕국을 가리키는 확고한 국가명으로 자리 잡은 것은 대체로 10세기 말에서 11세기 초의 과정으로 봅니다. 한 연구는 약 1000년 무렵 Engla land라는 이름이 ‘잉글리시 사람들의 왕국’을 가리키는 국가명으로 정착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합니다.
즉, 사람과 언어를 가리키던 Englisc라는 이름이 먼저 널리 사용되었고, 이후 그 사람들이 사는 통일된 왕국이 Engla land라고 불리게 된 것입니다.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잉글리시 사람들’이 되었다
초기 중세의 집단 정체성은 오늘날의 민족이나 국민 개념과 완전히 같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지역과 왕국, 친족과 지도자를 중심으로 정체성을 형성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머시아인이라고 생각했고, 어떤 사람은 서색슨인이나 켄트인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 왕국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비슷한 언어를 사용하며, 외부의 바이킹 세력과 대립하면서 더 큰 공동체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때 Englisc는 여러 지역의 차이를 없애는 이름이 아니라, 그 차이를 포함하면서도 이들을 하나로 묶는 상위 명칭이 되었습니다.
노섬브리아인도 Englisc였고, 머시아인도 Englisc였으며, 서색슨인과 켄트인도 Englisc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서로 다른 방언을 사용했지만, 브리튼어·고대 노르드어·라틴어와 구별되는 자신들의 언어를 Englisc라고 인식했습니다.
결국 영어라는 언어의 이름은 단순히 한 부족의 혈통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여러 지역과 왕국의 사람들이 자신들을 하나의 역사적·종교적·언어적 공동체로 인식하게 된 과정의 결과였습니다.
외부 사람들은 이들을 색슨족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앵글족의 이름이 잉글랜드 내부에서 전체를 대표하게 되었다고 해서, 모든 주변 민족이 이들을 앵글족의 이름으로 부른 것은 아닙니다.
영국에 살던 브리튼계 주민과 아일랜드·스코틀랜드의 게일계 주민들은 영국의 게르만계 이주민을 색슨족의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오늘날 웨일스어에서도 영국인을 뜻하는 Sais, 복수형 Saeson, 영어를 뜻하는 Saesneg에는 색슨족의 이름이 남아 있습니다.
아일랜드어의 Sasanach, 스코틀랜드 게일어의 Sasannach 역시 색슨족의 이름과 관련됩니다.
이것은 영국의 게르만계 주민들이 자기 자신을 주로 앵글족의 이름에서 나온 Englisc라고 불렀던 것과 대조됩니다.
내부에서는 앵글족의 이름이 공동 정체성의 이름으로 자리 잡았지만, 서쪽과 북쪽의 이웃들은 자신들이 먼저 접촉하거나 충돌했던 색슨족의 이름으로 이들을 기억한 것입니다.
하나의 민족이 자신을 부르는 이름과 주변 사람들이 그 민족을 부르는 이름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Anglo-Saxon이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
오늘날 우리는 앵글족·색슨족·주트족을 포함한 초기 중세 영국의 게르만계 주민들을 흔히 Anglo-Saxon, 즉 앵글로색슨인이라고 부릅니다.
이 명칭은 Angle과 Saxon을 결합한 말입니다.
앵글로색슨이라는 표현은 영국의 색슨족을 유럽 대륙에 남아 있던 고대 색슨족과 구분하기 위해 중세 라틴어 문헌에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영국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자신들을 항상 Anglo-Saxon이라고 불렀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지역에 따라 서색슨인·머시아인·노섬브리아인으로 자신을 구분하기도 했고, 더 넓게는 Englisc 또는 Angelcynn과 같은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Anglo-Saxon은 후대 역사학에서 여러 왕국과 집단을 하나로 묶어 설명하기 위해 널리 사용된 명칭입니다.
따라서 Anglo-Saxon과 English는 서로 완전히 다른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Anglo-Saxon은 주로 5세기부터 1066년 노르만 정복 이전까지 영국에 살았던 게르만계 주민과 그 문화를 설명하는 역사적 명칭이고, English는 그들이 형성한 민족과 언어의 이름이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England는 브리튼섬 전체를 뜻하지 않는다
England라는 이름을 이해할 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England는 영국을 구성하는 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북아일랜드 가운데 잉글랜드만을 가리킵니다.
브리튼섬 전체의 이름은 Britain 또는 Great Britain입니다.
5세기 이전부터 브리튼섬에는 Britain과 관련된 이름이 존재했습니다.
로마인들은 이 지역을 Britannia라고 불렀고, 로마의 지배를 받던 지역도 브리타니아라고 불렀습니다.
앵글족·색슨족·주트족이 영국에 정착했다고 해서 Britain이라는 지명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England는 브리튼섬 안에서 게르만계 주민들이 지배하고 정착한 지역의 정치적 이름으로 형성되었습니다.
따라서 Britain과 England는 처음부터 의미가 다른 이름입니다.
Britain은 섬과 더 넓은 지역의 이름이고, England는 앵글족의 이름에서 발전한 특정 국가와 지역의 이름입니다.
England와 English의 형성 과정을 정리하면
England와 English라는 이름은 어느 한순간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여러 세기에 걸쳐 사람과 언어, 국가의 이름이 차례로 형성되었습니다.
그 과정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Angle 또는 Angli
처음에는 유럽 대륙과 영국에 살던 앵글족이라는 특정 집단을 가리켰습니다.
Engle
앵글족을 가리키는 고대 영어 형태로 사용되었습니다.
Englisc
처음에는 ‘앵글족의’라는 뜻이었지만, 점차 영국에 정착한 여러 게르만계 주민과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 전체를 가리키게 되었습니다.
Engla land
문자 그대로는 ‘앵글족 또는 잉글리시 사람들의 땅’이라는 뜻이었습니다.
England와 English
발음과 철자가 변화하면서 오늘날의 국가명과 언어명이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앵글족의 이름은 하나의 부족 이름에서 출발하여 민족과 언어, 국가 전체의 이름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잉글랜드라는 이름에는 통합의 역사가 들어 있다
England라는 이름은 단순히 ‘앵글족이 많이 살았기 때문에’ 만들어진 이름이라고만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앵글족의 이름이 중요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름이 전체를 대표하게 된 데에는 여러 역사적 과정이 작용했습니다.
앵글족은 영국의 중부와 북부에 넓게 정착했습니다.
교회와 베다는 여러 게르만계 왕국의 주민을 Angli 또는 Englisc라는 이름으로 묶었습니다.
바이킹의 침입은 앵글족과 색슨족의 차이보다 이들을 하나의 잉글리시 집단으로 결합할 필요성을 높였습니다.
웨식스 왕실은 정치적 통일을 추진하면서 이미 존재하던 Englisc라는 공동 명칭을 사용했습니다.
그 결과 앵글족의 이름은 혈통을 가리키는 부족 명칭을 넘어, 서로 다른 왕국과 방언을 포괄하는 정치적·문화적 이름이 되었습니다.
England라는 이름 안에는 앵글족뿐 아니라 색슨족과 주트족, 그리고 새로운 사회 안에 편입된 수많은 브리튼계 주민의 역사도 함께 들어 있습니다.
잉글랜드는 단순히 앵글족만의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여러 집단이 충돌하고 섞이며 하나의 잉글리시 사회로 재편된 결과였습니다.
언어의 이름은 역사를 기억한다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는 English라는 이름은 약 1,500년 전 영국으로 이동한 앵글족의 이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영어가 앵글족의 언어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색슨족과 주트족을 비롯한 여러 게르만계 집단의 방언이 고대 영어를 형성했습니다.
이후 라틴어와 고대 노르드어, 노르만 프랑스어와 수많은 다른 언어가 영어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언어의 이름에는 최초의 역사적 출발점이 남아 있습니다.
English라는 이름은 영어가 원래 영국에서 저절로 생겨난 언어가 아니라, 북해를 건너온 사람들의 언어였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또한 여러 지역의 방언과 왕국이 하나의 언어공동체로 묶여 가는 과정도 보여줍니다.
나라와 언어의 이름은 단순한 단어가 아닙니다.
그 안에는 누가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했는지, 서로 다른 집단이 어떻게 하나의 공동체가 되었는지에 관한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여러 이름 뒤에는 여러 왕국이 존재했다
앵글족의 이름은 결국 잉글랜드와 잉글리시라는 전체 이름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5세기와 6세기의 영국에 처음부터 하나의 잉글랜드가 존재했던 것은 아닙니다.
앵글족·색슨족·주트족은 여러 지역에 정착하여 각각 작은 정치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이 공동체들은 서로 합쳐지고 분열되며 노섬브리아·머시아·이스트앵글리아·켄트·웨식스·에식스·서식스와 같은 왕국으로 발전했습니다.
나라와 언어를 가리키는 공동의 이름이 만들어졌지만, 실제 정치세계는 오랫동안 여러 왕국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이제 살펴보아야 할 문제는 이들 이주 집단이 영국에서 어떻게 왕국을 세웠는가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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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편. 앵글로색슨 왕국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앵글족·색슨족·주트족은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하나의 통일국가를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해안과 강 주변에 작은 정착지를 만들었고, 여러 지도자가 각자의 세력을 형성했습니다.
이 작은 공동체들은 어떻게 왕국으로 성장했을까요?
그리고 흔히 ‘앵글로색슨 칠왕국’이라고 부르는 노섬브리아·머시아·이스트앵글리아·켄트·웨식스·에식스·서식스는 실제로 어떤 관계에 있었을까요?
다음 글에서는 앵글로색슨 왕국들이 형성되고 경쟁하며 잉글랜드의 정치적 기반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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