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편. 앵글족·색슨족·주트족은 왜 영국으로 왔을까

 

4편. 앵글족·색슨족·주트족은 왜 영국으로 왔을까

「영어의 탄생과 고대 영어」 전체 시리즈

1편. 영어는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2편. 영어는 어떤 언어 계통에 속할까

3편. 영어 이전의 영국에는 누가 살았을까

4편. 앵글족·색슨족·주트족은 왜 영국으로 왔을까

5편. 잉글랜드와 잉글리시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

6편. 앵글로색슨 왕국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7편. 고대 영어는 오늘날 영어와 얼마나 달랐을까

8편. 고대 영어의 방언은 어떻게 나뉘었을까

9편. 고대 영어의 기본 어휘는 어디에서 왔을까

10편. 기독교는 고대 영어를 어떻게 바꾸었을까

11편. 고대 영어는 어떻게 기록되었을까

12편. 알프레드 대왕은 영어를 어떻게 지켰을까

13편. 『베오울프』는 왜 영어사에서 중요한가

14편. 노르만 정복 직전의 고대 영어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로마가 떠난 영국으로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왔다

오늘날 영어의 직접적인 역사는 앵글족·색슨족·주트족을 비롯한 게르만계 집단이 브리튼섬으로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이들은 원래 영국에 살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앵글족은 오늘날의 독일 북부와 덴마크 남부, 색슨족은 독일 북서부와 네덜란드 해안 지역, 주트족은 덴마크의 유틀란트반도와 관련된 게르만계 집단이었습니다.

그런데 5세기를 전후하여 이들이 북해를 건너 영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왜 자신들이 살던 땅을 떠나 영국으로 왔을까요?

과거에는 이들의 이동을 단순한 침략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실제 역사는 그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어떤 사람은 용병으로 들어왔고, 어떤 사람은 새로운 토지를 찾아왔으며, 어떤 집단은 전쟁과 약탈을 통해 세력을 넓혔습니다.

앵글족·색슨족·주트족의 영국 이동은 침략과 이주, 정착과 정치적 팽창이 오랜 시간에 걸쳐 함께 일어난 과정이었습니다.


로마군의 철수로 거대한 권력 공백이 생겼다

로마 제국은 서기 43년 브리타니아를 정복한 뒤 약 4세기 동안 영국의 상당 부분을 지배했습니다.

로마는 도로를 건설하고 도시를 세웠으며, 행정조직과 군사 방어 체계를 운영했습니다.

그러나 4세기 후반부터 로마 제국은 심각한 위기에 빠졌습니다.

유럽 대륙에서는 여러 게르만계 집단이 로마 제국의 국경을 압박했고, 제국 내부에서는 황제 자리를 둘러싼 정치적 혼란과 내전이 계속되었습니다.

로마는 더 이상 멀리 떨어진 브리타니아에 충분한 병력을 유지하기 어려웠습니다.

결국 5세기 초 로마군은 브리타니아에서 사실상 철수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서기 410년경을 로마의 브리타니아 지배가 끝난 시점으로 봅니다.

로마군이 떠났다고 해서 영국에 살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켈트계 브리튼인과 로마 문화를 받아들인 주민들은 계속 그 땅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을 보호하던 로마군과 중앙 행정조직이 사라졌습니다.

영국에는 강력한 중앙정부도, 섬 전체를 방어할 통일된 군대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앵글족·색슨족·주트족이 영국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배경이었습니다.


로마가 떠난 뒤 영국은 외부 공격에 노출되었다

로마 제국이 지배하던 시기에도 브리타니아는 외부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북쪽에서는 픽트족이 로마의 방어선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왔고, 서쪽 바다에서는 아일랜드계 집단인 스코트족의 공격이 이어졌습니다.

북해와 영국 해협에서는 게르만계 해상 집단의 약탈도 발생했습니다.

로마군이 주둔하고 있을 때는 요새와 군사도로, 해안 방어체계를 통해 이러한 공격에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로마군이 철수하자 영국의 여러 지역은 스스로를 방어해야 했습니다.

강력한 중앙정부가 사라진 영국에서는 지역 지도자들이 각각 자신의 영토와 주민을 보호해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브리튼 지도자들은 북해 건너편의 게르만 전사들을 불러들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처음에는 용병으로 들어왔을 가능성이 크다

앵글족·색슨족·주트족의 영국 진출에 관한 대표적인 이야기는 길다스와 베다의 기록을 통해 전해집니다.

길다스는 6세기경 활동한 브리튼계 성직자였고, 베다는 8세기 초 영국 교회와 민족의 역사를 기록한 학자였습니다.

이들의 기록에 따르면 브리튼의 지도자들은 픽트족과 스코트족의 공격을 막기 위해 게르만 전사들을 용병으로 고용했습니다.

외부 전사들을 고용하는 것은 당시로서는 특별히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로마 제국도 오랫동안 게르만계 전사들을 보조군이나 용병으로 활용했습니다. 브리타니아에 남아 있던 지도자들 역시 이러한 방식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처음 영국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대규모 이주민이 아니라 비교적 적은 수의 전사 집단이었을 수 있습니다.

이들은 해안이나 국경 지역을 방어하고 그 대가로 식량이나 토지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게르만 전사들은 로마군이 완전히 떠났으며, 영국의 지역 세력들이 서로 분열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영국 동부와 남부에는 농업에 적합한 토지가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용병으로 들어왔던 사람들이 점차 독립적인 군사세력으로 변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용병이었던 사람들이 새로운 지배자가 되었다

전통적인 기록에서는 브리튼의 지도자 보티건이 게르만계 전사들을 불러들였다고 전합니다.

이 이야기에는 헹기스트와 호르사라는 형제도 등장합니다. 이들은 브리튼인들을 돕기 위해 전사들을 이끌고 영국에 도착했다고 전해집니다.

처음에는 외부의 적을 막아 주는 대가로 식량과 토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게르만 전사들의 수가 늘어나고 더 많은 보상을 요구하면서 브리튼 지도자들과 갈등이 발생했습니다.

결국 이들은 자신들을 고용한 브리튼인들에게 반기를 들었고, 대륙에 있던 친족과 동료들을 더 많이 불러들였다고 합니다.

이 기록을 문자 그대로 모두 사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길다스와 베다는 사건이 일어난 뒤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 글을 썼기 때문입니다. 기록에는 역사적 사실뿐 아니라 종교적 해석과 전설적인 요소도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기본적인 흐름은 중요한 사실을 보여줍니다.

게르만계 집단의 영국 진출이 처음부터 한 번의 대규모 정복전쟁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일부는 용병으로 들어왔고, 이후 군사적·정치적 기회를 이용해 독립적인 세력으로 성장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북해는 장벽이 아니라 이동로였다

앵글족·색슨족·주트족이 영국으로 이동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지리적 조건이었습니다.

영국은 유럽 대륙과 바다로 떨어져 있었지만, 이들이 살던 북해 연안 지역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땅은 아니었습니다.

오늘날의 독일 북부, 네덜란드, 덴마크 지역에서 영국 동부 해안까지는 북해를 건너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미 북해를 통해 무역하고, 어업을 하고, 약탈과 군사 활동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북해는 사람들의 이동을 완전히 막는 장벽이라기보다 여러 해안 지역을 연결하는 통로에 가까웠습니다.

영국 동부에는 배가 들어가기 좋은 하구와 강이 많았습니다.

템스강과 험버강을 비롯한 여러 강을 따라가면 해안에서 내륙의 농경지까지 비교적 쉽게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초기 게르만계 정착지가 영국의 동부와 남부에 집중된 것도 이러한 지리적 조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새로운 토지와 생활 기반이 필요했다

앵글족·색슨족·주트족의 이동을 전쟁만으로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처음에는 전사들이 중심이었을 수 있지만, 이후에는 여성과 어린이, 농민과 장인들도 영국으로 이동했습니다.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주거지와 농기구, 장신구, 공동묘지는 이들이 단순히 약탈한 뒤 돌아간 것이 아니라 영국에 정착하여 생활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들이 살던 유럽 대륙의 북해 연안에서는 인구 증가와 집단 간 경쟁, 토지 부족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해안 저지대에서는 홍수와 환경 변화가 생활에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습니다.

반면 영국 동부와 남부에는 비교적 평탄하고 농업에 적합한 토지가 많았습니다.

로마의 행정체계가 무너지면서 토지 소유와 지역 통제력이 약해진 곳도 있었을 것입니다.

새로운 농경지와 정치적 기회를 찾던 사람들에게 영국은 충분히 매력적인 정착지가 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영국으로 온 사람들의 목적은 모두 같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왔고, 어떤 사람은 토지를 얻기 위해 왔으며, 어떤 사람은 먼저 정착한 친족과 공동체를 따라왔을 것입니다.


앵글족은 어디에 정착했을까

앵글족은 오늘날의 독일 북부와 덴마크 남부 사이에 있는 슐레스비히 지역, 특히 앙겔른반도 주변과 관련된 집단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국으로 건너온 앵글족은 주로 브리튼섬의 동부와 북부에 정착했습니다.

이스트앵글리아, 머시아, 노섬브리아와 같은 지역이 앵글족의 정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앵글족은 시간이 지나면서 영국의 넓은 지역에 정치적·언어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습니다.

훗날 앵글족의 이름은 영국과 영어를 가리키는 이름의 형성에도 중요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색슨족 역시 강력한 왕국을 세웠는데, 왜 앵글족의 이름이 전체를 대표하게 되었는지는 별도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문제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색슨족은 어디에 정착했을까

색슨족은 오늘날의 독일 북서부와 네덜란드 북동부 해안에 가까운 지역에서 생활했던 게르만계 집단입니다.

색슨족은 주로 영국 남부에 정착했습니다.

이들이 세운 대표적인 지역은 에식스, 서식스, 웨식스입니다.

에식스는 동쪽 색슨족의 땅, 서식스는 남쪽 색슨족의 땅, 웨식스는 서쪽 색슨족의 땅이라는 뜻에서 만들어진 이름입니다.

색슨족의 이름은 오늘날 영국의 지명 속에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특히 웨식스는 훗날 앵글로색슨 왕국들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알프레드 대왕 역시 웨식스의 왕이었습니다.

색슨족은 앵글족과 함께 초기 영국의 정치와 언어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집단이었습니다.


주트족은 어디에 정착했을까

주트족은 일반적으로 오늘날 덴마크의 유틀란트반도와 관련된 집단으로 설명됩니다.

다만 주트족의 정확한 기원과 정체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이 있습니다.

베다의 기록에 따르면 주트족은 주로 켄트, 와이트섬, 햄프셔 남부의 일부 지역에 정착했습니다.

주트족은 앵글족이나 색슨족보다 규모가 작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켄트는 유럽 대륙과 가까운 영국 남동부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무역과 기독교 전파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따라서 주트족은 수적으로는 상대적으로 작았더라도 초기 영국 사회의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침략이었을까, 이주였을까

과거의 영국사에서는 앵글족·색슨족·주트족이 대규모로 침략하여 브리튼인들을 서쪽으로 몰아냈다고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실제로 영국의 여러 지역에서는 전투와 정복이 일어났습니다.

일부 브리튼인은 웨일스와 콘월, 영국 북서부로 이동했습니다. 일부는 바다를 건너 오늘날 프랑스의 브르타뉴 지역으로 이주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브리튼인이 사라지거나 쫓겨난 것은 아닙니다.

상당수의 기존 주민은 새로운 사회 안에 그대로 남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들은 게르만계 이주민과 혼인하거나, 새로운 지배자들의 정치체계 안에 편입되거나, 점차 게르만계 언어와 문화를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지역에 따라 변화의 방식도 달랐을 것입니다.

어떤 지역에서는 무력 충돌과 정복이 중심이었고, 어떤 지역에서는 평화로운 정착과 혼합이 더 많이 이루어졌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의 변화를 단순히 침략이나 이주 가운데 하나로만 설명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침략과 이주, 정복과 동화가 여러 세대에 걸쳐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브리튼인들은 모두 서쪽으로 밀려났을까

게르만계 이주민들이 영국 동부와 남부에 정착하면서 켈트계 브리튼인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약해졌습니다.

그러나 기존 주민들이 모두 웨일스나 콘월로 쫓겨났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영국에는 이미 많은 농민과 장인, 지역 주민이 살고 있었습니다.

새로 들어온 이주민들이 넓은 지역을 차지하려면 기존 주민들을 완전히 제거하기보다 그들을 지배하거나 사회 안에 편입하는 편이 더 현실적이었을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지배층과 군사집단은 게르만계였지만, 일반 주민 가운데에는 브리튼계 사람들이 상당수 남아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영국 동부와 남부에서는 브리튼어보다 게르만계 언어가 점차 우세해졌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인구수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권력과 사회적 지위, 공동체의 재편과 관련된 변화였습니다.


이주민들의 언어가 고대 영어의 바탕이 되었다

앵글족·색슨족·주트족의 영국 이동이 영어사에서 중요한 이유는 이들이 영국의 언어를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로마 지배 이전과 로마 지배 시기의 영국 주민들은 주로 켈트계 브리튼어를 사용했습니다.

로마의 행정과 군대, 상류문화에서는 라틴어도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게르만계 이주민들이 영국 동부와 남부에서 정치적 우위를 차지하면서 그들의 언어도 함께 확산되었습니다.

앵글족·색슨족·주트족의 언어는 서로 완전히 다른 언어가 아니었습니다.

이들이 사용한 언어는 모두 서게르만어 계통에 속했으며, 서로 가까운 방언 관계에 있었습니다.

영국에 정착한 뒤 이 방언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고대 영어의 여러 지역 방언으로 발전했습니다.

고대 영어에는 앵글족과 관련된 앵글 방언, 색슨족과 관련된 색슨 방언, 주트족의 정착 지역과 관련된 켄트 방언이 나타났습니다.

오늘날 영어는 바로 이들 게르만계 언어가 영국에서 변화하고 발전한 결과입니다.


영어는 원래 영국에서 태어난 언어가 아니었다

영어의 역사를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사실 가운데 하나는 영어가 처음부터 영국에 존재했던 언어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영어의 조상은 북해 건너편의 유럽 대륙에 있었습니다.

앵글족·색슨족·주트족을 비롯한 게르만계 사람들이 자신들의 언어를 가지고 영국으로 이동했습니다.

그 언어는 영국의 새로운 환경과 정치질서 속에서 변화했습니다.

이후 켈트어와 라틴어, 고대 노르드어, 프랑스어 등 여러 언어와 접촉하면서 오늘날의 영어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영어의 탄생을 이해하려면 영국이라는 땅만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독일 북부와 네덜란드, 덴마크, 북해를 하나의 연결된 공간으로 함께 살펴보아야 합니다.

영어는 북해를 건너온 사람들의 언어였습니다.


세 집단만 영국으로 왔던 것은 아니다

영국으로 이동한 게르만계 사람들이 모두 앵글족·색슨족·주트족 가운데 하나에 속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프리슬란트인을 비롯하여 북해 연안의 여러 집단도 이동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집단 정체성은 오늘날의 국민국가처럼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앵글족·색슨족·주트족이라는 이름도 후대의 기록자들이 복잡한 여러 집단을 크게 구분하기 위해 사용한 명칭일 수 있습니다.

실제 이주민들은 서로 다른 지역과 작은 공동체에서 왔으며, 영국에 정착한 뒤 새로운 정치적 정체성을 만들어 갔을 것입니다.

따라서 고대 영어 역시 세 개의 언어가 단순하게 합쳐져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서로 가까운 여러 서게르만어 방언이 영국에서 접촉하고 변화하면서 형성된 언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영국이 시작되었다

앵글족·색슨족·주트족이 영국으로 온 이유를 하나로만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로마군 철수로 생긴 권력 공백이 있었습니다.

외부 공격에 시달리던 브리튼 지도자들이 게르만계 전사들을 용병으로 불러들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북해를 건너는 이동이 가능했고, 영국 동부와 남부에는 농업에 적합한 토지가 있었습니다.

새로운 땅과 정치적 기회를 찾던 사람들도 영국으로 이동했습니다.

처음에는 소수의 전사들이 들어왔을 수 있지만, 이후에는 가족과 농민, 장인들이 함께 이동하면서 정착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기존의 브리튼인들과 싸우기도 하고, 함께 살아가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로마의 속주였던 브리타니아는 여러 게르만계 왕국이 경쟁하는 새로운 사회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사용하던 서게르만어 방언들은 영국에서 고대 영어로 발전했습니다.

앵글족·색슨족·주트족의 이동은 단순한 민족 이동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영국의 정치와 사회, 문화와 언어가 완전히 새롭게 재편되는 출발점이었습니다.


다음 글

5편. 잉글랜드와 잉글리시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

앵글족과 색슨족은 모두 영국에서 강력한 세력을 형성했습니다.

특히 색슨족이 세운 웨식스는 훗날 영국 통일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그런데 왜 나라의 이름은 색슨족이 아니라 앵글족의 이름을 따라 잉글랜드가 되었을까요?

또한 여러 게르만계 방언은 왜 잉글리시, 즉 영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을까요?

다음 글에서는 앵글족의 이름이 영국 전체와 영어 전체를 대표하게 된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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