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강대국 미국의 등장 1편
시리즈 허브 글
초강대국 미국의 등장
국내 산업국가는 어떻게 세계 최강국이 되었나
오늘날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가운데 하나다. 달러는 국제무역과 금융의 중심에 있고, 미국 중앙은행의 금리 결정은 한국을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의 환율과 주식시장에 영향을 준다. 미국 기업은 반도체, 인공지능, 금융, 항공우주, 에너지, 문화산업에서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군사적으로도 미국은 대서양과 태평양을 넘어 세계 각 지역에 동맹과 기지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처음부터 초강대국이 아니었다.
1776년 독립을 선언했을 당시 미국은 영국 제국에서 떨어져 나온 신생국이었다. 유럽의 강대국들은 이미 세계 곳곳에 식민지와 무역망을 가지고 있었고, 영국은 해군력과 금융력을 이용해 세계경제를 움직이고 있었다. 미국의 초기 관심은 세계를 지배하는 데 있지 않았다. 북아메리카 대륙 안에서 영토를 넓히고, 인구를 늘리고, 농업과 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였다.
19세기 미국은 대륙국가로 성장했다. 서부로 영토가 확대됐고, 철도는 동부와 서부를 연결했다. 유럽에서 건너온 이민자는 노동자이자 소비자가 됐다. 석탄, 철광석, 석유, 목재와 같은 풍부한 자원은 산업 발전의 기반이 됐다.
남북전쟁은 미국 내부의 비극적인 충돌이었지만, 전쟁 이후 연방정부의 힘은 더욱 강해졌다. 미국은 하나의 거대한 국내시장과 산업체계를 가진 국가로 통합됐다. 철강, 철도, 석유, 금융, 기계산업이 급속히 성장했고, 대기업과 은행이 등장했다.
그러나 산업의 성공은 미국을 새로운 방향으로 밀어냈다.
공장이 커지자 시장이 필요해졌다
미국 공장에서 생산되는 상품이 늘어나면서 기업들은 국내시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하기 시작했다. 공장을 계속 가동하려면 더 많은 소비자가 필요했다. 값싼 원료를 확보하고, 상품을 판매할 해외시장도 필요했다.
미국 기업이 해외로 나가자 정부의 역할도 달라졌다. 해외에 있는 미국 기업과 상선을 보호해야 했고, 상품이 이동하는 항로를 지킬 해군력이 필요했다. 군함이 장기간 작전하려면 연료와 물자를 보급할 항구와 기지도 필요했다.
경제적 팽창이 군사적 팽창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 시점부터 미국은 대륙 내부만 바라보는 국가에서 카리브해와 태평양을 바라보는 국가로 바뀌기 시작했다. 쿠바, 하와이, 필리핀, 중국 시장이 미국의 관심 대상이 됐다.
미국은 새로운 시장이 필요했고, 시장에 접근하기 위해 해군이 필요했으며, 해군을 유지하기 위해 해외기지가 필요했다.
이 세 요소가 결합하면서 미국의 세계 진출이 본격화됐다.
스페인과의 전쟁, 미국이 제국이 되다
1898년 미국과 스페인의 전쟁은 미국의 위치를 크게 바꾸었다. 미국은 쿠바 문제를 명분으로 스페인과 전쟁을 벌였지만, 전쟁 결과는 쿠바의 독립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미국은 푸에르토리코와 괌을 차지했고, 필리핀에 대한 지배권도 확보했다. 이제 미국은 태평양과 카리브해에 해외 영토와 군사적 거점을 가진 국가가 됐다.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배에 맞서 독립한 나라였다. 그런데 독립한 지 100여 년이 지난 뒤 스스로 해외 식민지를 가진 국가가 된 것이다.
미국 내부에서도 논쟁이 벌어졌다. 미국이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과 같은 길을 가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러나 해외시장과 해군기지, 전략적 영향력을 원했던 세력은 팽창을 지지했다.
이 사건은 미국이 단순한 산업국가를 넘어 제국적 국가로 변한 출발점이었다.
그렇지만 1898년의 미국은 아직 세계의 중심은 아니었다. 미국을 세계 강국으로 끌어올린 더 큰 사건은 유럽에서 시작됐다.
제1차 세계대전이 미국의 운명을 바꾸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 세계경제의 중심은 유럽이었다. 영국 파운드는 국제무역과 금융의 기준이었고, 런던은 세계 금융의 중심지였다.
미국은 강력한 산업국가였지만 금융과 국제정치에서는 여전히 유럽의 영향력이 컸다.
그러나 1914년 유럽에서 전쟁이 시작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유럽 국가들은 막대한 군수품과 식량, 원자재가 필요했다. 미국은 처음에는 전쟁에 직접 참가하지 않으면서 유럽에 상품과 자금을 공급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공장과 은행에 의존했다.
유럽은 미국의 물자를 사기 위해 금과 자산을 사용했고, 미국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렸다. 전쟁 전에는 유럽 자본을 받아들이던 미국이 전쟁 후에는 유럽에 돈을 빌려주는 나라로 변했다.
미국은 채무국에서 채권국이 됐다.
이것은 단순히 미국의 은행 잔액이 늘었다는 뜻이 아니다. 세계경제의 권력 중심이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돈을 빌려주는 국가는 빌리는 국가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미국은 유럽의 전쟁과 재건, 부채 문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로 올라섰다.
런던에서 뉴욕으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런던의 영향력이 곧바로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영국은 여전히 거대한 제국과 금융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은 전쟁 부채와 제국 유지 비용을 감당해야 했다. 반면 미국은 산업시설이 크게 파괴되지 않았고, 세계 최대 규모의 생산력과 자본을 축적했다.
뉴욕의 월스트리트는 국제금융의 중심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달러는 미국 국내에서만 사용하는 화폐가 아니라 국제거래와 대출에 사용되는 통화로 확대됐다.
파운드와 달러의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달러 패권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세계 금융의 무게중심은 이미 미국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대공황, 미국은 무너지는가
1920년대 미국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나라였다. 자동차, 라디오, 냉장고와 같은 상품이 빠르게 보급됐다. 광고와 할부판매는 소비를 확대했고, 주식시장은 계속 오를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번영의 이면에는 문제가 쌓이고 있었다.
생산은 빠르게 늘었지만 노동자의 소득과 소비가 같은 속도로 증가하지 않았다. 기업과 개인은 빚을 늘렸고, 주식시장에는 투기성 자금이 몰렸다.
1929년 주식시장이 무너지면서 대공황이 시작됐다.
은행이 파산하고 기업이 문을 닫았다. 실업자가 급증했고 농민과 노동자의 생활이 무너졌다. 미국의 위기는 유럽과 다른 지역으로 퍼졌다.
미국식 자본주의가 실패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미국은 대공황 속에서 국가의 역할을 바꾸기 시작했다.
루스벨트 행정부는 뉴딜을 통해 은행과 금융시장을 규제하고, 공공사업을 확대하고, 사회보장제도를 만들었다. 정부가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체제가 강화됐다.
뉴딜이 대공황을 완전히 끝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뉴딜은 연방정부가 경제와 사회를 관리하는 능력을 크게 확대했다.
이 능력은 곧 제2차 세계대전에서 폭발적으로 사용된다.
제2차 세계대전, 세계의 공장이 된 미국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됐을 때 유럽과 아시아의 주요 국가들은 서로의 산업시설을 파괴하고 있었다. 반면 미국 본토는 전쟁의 직접적인 파괴에서 비교적 안전했다.
미국은 민간산업을 군수산업으로 전환했다. 자동차 공장은 전차와 군용차량, 항공기 부품을 생산했다. 조선소는 군함과 수송선을 빠르게 건조했다. 철강, 석유, 화학, 통신, 항공산업이 전쟁을 통해 급성장했다.
미국은 자국 군대에 필요한 물자뿐 아니라 영국과 소련을 포함한 연합국이 사용할 무기와 식량, 차량, 연료를 공급했다.
미국은 전쟁에 참가한 국가인 동시에 연합국 전체의 공장이었다.
전쟁은 대공황으로 남아 있던 실업을 줄였고, 정부와 기업, 대학과 군대가 결합한 연구개발 체제를 만들었다. 항공기, 레이더, 통신, 원자력과 같은 기술이 빠르게 발전했다.
미국의 산업력은 군사력과 과학기술로 전환됐다.
1945년, 미국은 다른 국가들과 전혀 다른 위치에 있었다
1945년 전쟁이 끝났을 때 독일과 일본은 패전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승전국이었지만 전쟁으로 경제와 재정이 크게 약화됐다. 소련은 강력한 군사대국으로 등장했지만 막대한 인명과 산업 피해를 입었다.
미국은 달랐다.
미국 본토의 주요 산업시설은 보존돼 있었고, 전쟁을 통해 생산능력은 오히려 확대됐다. 미국은 거대한 해군과 공군, 전 세계에 파견할 수 있는 군대를 보유했다. 과학기술과 금융력, 막대한 금 보유량과 원자폭탄까지 갖게 됐다.
이제 미국은 국제질서에 참여하는 국가가 아니라 국제질서를 설계할 수 있는 국가가 됐다.
미국은 유엔과 국제기구의 설립에 깊이 관여했고, 달러를 중심으로 새로운 세계경제를 만들 준비를 했다. 동시에 소련과의 경쟁을 통해 냉전체제를 형성하게 된다.
이 시리즈는 미국을 찬양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이 시리즈의 목적은 미국이 훌륭한 나라라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미국의 모든 행동을 제국주의라고 비난하는 것도 아니다.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미국의 힘은 실제로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미국은 산업을 키웠고, 시장을 넓혔다. 해군과 해외기지를 확보했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유럽의 부와 권력을 흡수했다. 대공황 속에서는 국가체제를 재편했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산업력을 군사력으로 전환했다.
이 과정에는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이상도 있었지만, 시장과 영토, 금융과 군사력이라는 현실적 이해관계도 있었다.
미국이 말하는 공식적인 역사와 실제 힘이 움직인 구조를 함께 살펴봐야 미국의 등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1945년 미국은 초강대국이 됐다.
그러나 미국의 진짜 세계 통제는 그때부터 시작된다.
미국은 냉전체제를 통해 자유진영의 군사·외교 질서를 조직했고, 달러와 환율을 통해 세계경제의 규칙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다음 두 시리즈로 이어진다.
초강대국 미국의 등장 전체 시리즈
- 미국은 왜 세계시장으로 나갔나
- 스페인과의 전쟁, 미국 제국의 시작
- 제1차 세계대전,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 달러와 월스트리트의 부상
- 대공황과 뉴딜
- 제2차 세계대전, 세계의 공장이 된 미국
- 1945년, 초강대국 미국의 등장
다음 시리즈
냉전체제로 세계를 통제한 미국
미국이 만들어 버린 세계경제
한국과 미국의 운명적 연결
- 2부: 냉전체제로 세계를 통제한 미국
- 3부: 미국이 만들어 버린 세계경제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