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기억나서

오늘은 아버지가 많이 생각나는 곳을 다녀왔습니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시지만, 아버지가 떠오르는 장소는 제 고향 강릉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힘들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그만큼 소중한 기억이기도 합니다.

가끔 옛날 노래나 TV 방송을 접할 때면 문득 그런 생각이 납니다. 그 시절에는 밖에 있다가 집에 돌아가면 늘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셨고, 식탁에는 된장국과 어머니가 무쳐주신 나물 반찬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 평범했던 일상이 지금은 더없이 그리운 기억이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 달쯤 지났을 때, 갑자기 우울 증상이 찾아왔습니다. 몸이 무기력해지고, 일어나기조차 힘들었으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상태가 조금은 두렵게 느껴졌습니다. 어머니께 말씀드리고 신경안정제를 복용하면서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지만, 일주일 정도는 거의 누워 지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제 머릿속에서는 ‘아버지’라는 단어 자체를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멀리서 그 단어가 보이기만 해도 외면하려는 제 모습을 발견하고는 스스로도 놀랐습니다. 아마도 살아가기 위해, 다시 일어나기 위해 제 자신이 아버지를 잠시 밀어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계속 그 슬픔 속에 머물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오늘, 다시 아버지가 생각나는 곳을 다녀오고 나니 자연스럽게 아버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사랑아 왜 도망가”라는 노래를 들으며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그 눈물은 예전과는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아프셨을 때는 수술만 받으면 좋아지실 거라 믿었습니다. 결과를 알 수 없었기에 자식으로서 수술을 말릴 수는 없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선택했지만, 상황은 점점 더 나빠졌습니다. 저와 동생은 그 과정에서 들어간 비용을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버지가 좋아지시기만을 바랐습니다. 그렇기에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이 너무도 야속하게 느껴졌습니다.

오늘은 그 노래를 들으면서도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 저 잘 께요.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봐요.”

어릴 적 기억 하나가 떠오릅니다. 제가 여섯 살쯤 되었을 때, 어린이날이 처음으로 공휴일이 된다는 방송이 나왔습니다. TV에서 방정환 선생님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아버지께 무언가 말씀을 드렸던 것 같습니다. 동생과 방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아버지가 문을 열고 들어오셔서 아무 말 없이 빵 두 봉지를 툭 던져주셨습니다.

그때는 갑작스럽게 왜 빵을 주셨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아들이 TV를 보고 제법 똘똘한 말을 하는 모습이 대견하셨던 것 같습니다. 무언가를 해주고 싶으셨지만, 표현 방법을 몰라서 당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행동하신 것이겠지요. 아마 자전거를 타고 가게에 가서, 우리 형제를 떠올리며 빵을 고르셨을 것입니다.

그중 하나는 카스테라였습니다. 지금도 그 빵이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아버지는 자상하고 섬세한 분은 아니셨지만, 당신만의 방식으로 자식을 깊이 사랑하신 분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갑자기 카메라를 사오시고, 비싼 삼각대까지 마련하시더니 가족 사진을 열심히 찍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역시 아버지의 사랑 표현이었습니다.

이런 기억들이 쌓여, 아버지와 저를 이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 부모를 하늘나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가슴 속에 담아두는 것이라고 말하던데, 이제야 그 말의 의미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예전에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다니던 길이나 장소에 가면, 그때의 기억을 꺼내보게 됩니다. 이제는 아버지를 추억하는 방법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시간이 더 지나면, 그 기억을 떠올리며 웃을 수 있는 날도 오겠지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저를 보며 미소를 지으셨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저는 적어도 아버지께서, 자식들과 아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고 떠나셨다고 믿습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중국의 뉴욕, 중국 근대사의 아픔을 품은 상하이의 역사를 살펴볼까요 [도시 역사 시리즈 3]

도쿄 행정 구역(간략한 정리) [행정 구역, 시리즈 1]

도쿄 23구 지도(구시가지 행정구역)[행정 구역 시리즈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