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떠나보낸 아들이 살아 남는 방법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한동안 마음속이 조금은 복잡했습니다. 하지만 3년이 넘게 병원에 계시면서 가족들은 참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지요. 그런데 정작 우리 가족은 다들 잘 버틴 것 같습니다. 다들 아버지가 살아나시기를 바랐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더군요. 다들 그게 인생이라며 그렇게 말하고 말았지요.
그래도 아버지가 살아 계신 것이 좋았습니다. 병원에 누워 계셔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병원에서 아버지를 뵐 때마다 너무 힘들어하시는 모습이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병원 천장만 바라보고 계시는 모습을 보며, 어느 순간 우리가 너무 욕심을 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였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 다가가 말씀드렸습니다.
“아버지, 9년 동안 누워 있다가 살아난 사람도 있대요. 누가 알아요, 교회에 가서 간증하게 될지.”
그리고 아버지의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아버지의 눈이 저를 바라보셨습니다. 눈밖에 움직일 수 없으셨지만, 그 눈에 분명히 웃음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웃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천장을 바라보셨습니다. 그때는 그 의미를 몰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아마도 아버지는 우리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돌아가시는 날 아침에도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가족이 당신을 사랑했다는 것을 아시고, “나는 이제 천국에 간다”라고 말씀하고 싶으셨던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표현할 방법이 없으니 천장만 바라보셨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납골당에 봉안을 한 뒤 2주가 지났습니다. 화요일이었던가요. 예전에 저는 유가선물로 돈을 많이 번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사고 이후 정신적으로 흔들리면서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시작하니 감이 조금씩 살아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아버지 생각이 났습니다.
‘그때 돈을 많이 벌었더라면 아버지께 덜 미안했을 텐데.’
그 생각이 드는 순간 몸이 무너졌습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마치 물에 젖은 솜이불로 온몸을 감싸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습니다.
도저히 힘들어서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어머니가 처방받으신 신경안정제를 조금 나눠 주셨습니다. 이틀 정도 복용하니 몸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지난 3년 동안 제 마음속에 쌓여 있던 긴장감이 한꺼번에 풀리면서 나타난 반응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사실 저는 많이 긴장하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전화만 와도 ‘오늘인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저도 힘들었지만, 어머니를 지켜야겠다는 마음에 일부러 같이 앉아 TV도 보고,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고, 동생이 부담될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기도 했습니다. 매일 무너질까 봐 운동하고 걷고, 아침이면 기도하러 가기도 했습니다.
그런 긴장감이 어느 순간 사라졌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머릿속에서 ‘아버지’라는 단어가 떠오르면, 그 기억이 한쪽 구석으로 물러나며 희미해졌습니다. 제 정신이 의도적으로 그 기억을 밀어내는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우울해질까 봐 스스로 보호하려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제 정신 상태는 아버지가 쓰러지시기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는 이제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너무 힘들고 아쉽지만, 현실은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대신 제게 다가온 생각은 이것이었습니다.
‘이제는 다음은 나다.’
해보지 못한 것이 너무 많고,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블로그를 시작한 것도, 유튜브를 시작한 것도, 그리고 그 전에 WTI 유가선물을 했던 것도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적어도 제 삶을 미루지만은 않았으니까요.
지금은 머릿속의 부담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마음이 가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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