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이전의 영국 [영국의 역사 시리즈1]
스톤헨지 시대, 기록이 없던 섬의 시작
영어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고대 영어부터 시작해서는 부족합니다.
영어는 한 번에 만들어진 언어가 아니라, 여러 시대의 언어가 겹겹이 쌓여 형성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깁니다.
영어가 등장하기 이전, 이 섬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었을까요?
기록이 없던 시대
기원전 약 3000년경, 오늘날 영국이라 불리는 이 땅에는 아직 영국이라는 국가도, 영어라는 언어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 시기는 신석기 농경 공동체가 정착 생활을 하던 시대였습니다. 사람들은 부족 단위로 모여 살았고, 농사를 지으며 생존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 시대에는 문자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당시의 역사 기록을 직접 읽을 수 없습니다.
대신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그들의 삶을 추정할 뿐입니다.
스톤헨지의 등장
Stonehenge는 기원전 약 3000년경부터 건설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거대한 구조물은 약 1500년에 걸쳐 여러 단계로 발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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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000년경: 초기 토목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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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500년경: 거대한 사르센 석재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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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000년경: 재배치와 확장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은 이러한 건설 단계를 비교적 정확하게 밝혀냈습니다.
이 시기는 신석기에서 청동기로 전환되는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단순한 부족 사회가 아니었다
20~30톤에 이르는 거대한 돌을 이동시키려면 상당한 조직력과 노동력이 필요합니다.
이는 단순한 수렵 집단이 아니라,
이미 일정한 사회 구조와 협력 체계를 갖춘 공동체였음을 보여줍니다.
스톤헨지 인근에서 발견된
Durrington Walls는 이를 뒷받침합니다.
이곳에서는 주거지 흔적, 동물 뼈, 도자기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특히 대규모 축제와 관련된 흔적은, 이 지역이 단순한 마을이 아니라 집단 의례의 중심지였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스톤헨지는 무엇이었을까
학자들은 스톤헨지를 다음과 같이 해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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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의례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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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 숭배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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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 축제 중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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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 관측 시설
특히 하지와 동지의 태양 위치와 정렬된 구조는
이곳이 달력 기능을 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농경 사회에서 계절의 변화는 곧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당시 세계와의 연결
같은 시기, 이집트에서는 피라미드가 건설되고 있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도시 문명이 등장했습니다.
청동기 기술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었습니다.
또한 스톤헨지의 일부 돌은 약 200km 떨어진 웨일스 지역에서 옮겨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는 브리튼이 완전히 고립된 섬이 아니라, 이미 교류 네트워크 안에 있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인구 이동과 문화 변화
최근 DNA 연구에 따르면, 브리튼 섬의 초기 농경민들은 유럽 대륙에서 이주해 왔습니다.
이후 청동기 시대에 또 다른 인구 이동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스톤헨지 건설자와 후대의 켈트족은 동일 집단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즉, 이 섬은 이미 여러 차례 인구 교체와 문화 변화를 겪었습니다.
영어 이전의 적층 구조
영어는 이 섬의 최초 언어가 아닙니다.
스톤헨지 시대의 농경 공동체가 있었고,
그 위에 켈트 문화가 들어왔으며,
그 위에 로마가 지배했고,
그 위에 게르만족이 정착했습니다.
영어는 가장 위에 놓인 층입니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기록조차 남지 않은 시대가 먼저 존재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브리튼 섬에 철기 문화를 가져온 켈트족과,
오늘날 스코틀랜드·웨일즈·하이랜드에 남아 있는 켈트 언어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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