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문명의 지탱해온 라틴어 [성경 번역의 역사도 서사가 있다. 5]
사멸된 언어, 그러나 사라지지 않은 언어 ― 라틴어
라틴어는 흔히 사멸된 언어로 분류됩니다.
이는 더 이상 어떤 국가에서도 공용어로 사용되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그러나 역설적으로 라틴어는 인류 역사에서 지워질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진 언어입니다.
영어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건축학·법학·의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결국 반드시 마주치게 되는 언어가 바로 라틴어입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라틴어는 단어를 만들어내는 방식 자체가 매우 효율적인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단어를 생산하는 언어
라틴어는 어근에 접두어와 접미어를 결합하여
의미를 자유롭게 확장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분사, 파생어, 추상 개념을 만들어내는 데 탁월한 언어이지요.
이러한 특징은 러시아어에서도, 영어에서도,
그리고 수많은 유럽 언어들에서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이는 곧 라틴어가 단순한 한 언어가 아니라
언어적 사고방식 자체를 남긴 문화였다는 뜻입니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라틴어는
가톨릭 교회 안에서 특별한 언어로 살아 있습니다.
영어를 전공한 저에게 라틴어는
항상 거대한 산처럼 느껴지는 언어입니다.
그래서 이 언어의 역사를 한 번 짚어보고자 합니다.
1. 고대 라틴어 – 지역 언어의 출발
(기원전 7세기경)
라틴어는 기원전 7세기경,
로마 주변 지역에서 사용되던 언어로 출발합니다.
이를 고대 라틴어라고 부릅니다.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며,
이탈리아어파로 분류됩니다.
이 시기의 라틴어는 비교적 간결한 문법을 가지고 있었고,
그리스 문자와 문화의 영향을 받은 생활 언어였습니다.
2. 고전 라틴어 – 언어의 황금기
(기원전 1세기)
기원전 1세기부터 라틴어는 황금기를 맞이합니다.
이 시기에
-
**키케로**의 산문과 수사학
-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
가 탄생합니다.
문법, 어휘, 문체가 표준화되었고
라틴어는 교육·정치·법·철학의 언어가 됩니다.
우리가 오늘날 교과서로 배우는 라틴어는
사실상 이 시기에 완성된 언어입니다.
3. 속라틴어 – 민중의 언어
(기원후 1~5세기)
그다음 등장하는 것이 속(俗)라틴어(Vulgar Latin) 입니다.
이 시기의 라틴어는
군인, 상인, 농민 등 민중이 사용하던 일상 언어였습니다.
중요한 점은 바로 여기서
라틴어가 분화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이 속라틴어가 각 지역에서 변형되며
오늘날의 로망스어를 만들어냅니다.
-
프랑스어
-
이탈리아어
-
스페인어
-
포르투갈어
-
루마니아어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놀라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영어는 로망스어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영어는 프랑스어 어휘를 대량으로 사용하지만
언어 계통상 로망스어가 아닙니다.
이 흥미로운 사연은
훗날 영어의 역사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4. 중세 라틴어 – 기독교의 언어
(기원후 5~15세기)
이제 라틴어는
기독교 문명의 핵심 언어로 들어갑니다.
중세 라틴어 시기는
동로마제국과 서로마제국이
서로 다른 길로 가기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 출발점에는 종교가 있습니다.
성경 번역과 두 개의 로마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한 후,
여러 종류로 난립하던 옛 라틴어 성경(Vetus Latina)을 정리하기 위해
교황 다마소 1세는
**히에로니무스**에게
새로운 성경 번역을 명합니다.
이렇게 탄생한 성경이 바로 **불가타**입니다.
그 이전,
**사도 바울**은
기원후 65년경부터 고대 그리스어(헬라어)로 신약을 기록했고,
구약은 **칠십인역**과 함께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로마 시민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라틴어였기에
성경 역시 라틴어로 번역되어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
동로마는 그리스어 성경
-
서로마는 라틴어 성경
을 사용하게 되었고,
종교·문화·제도는 점점 다른 방향으로 발전합니다.
이렇게 두 개의 성경은
서양 역사 전체에 깊고도 긴 흔적을 남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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