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2일 전에 돌아 가셨어요. 생각이 너무 많아요.

 4년을 정말 눈 한 번 돌리기도 힘든 상태로 버티고 또 버텨 주셨어요.

4년 전, 아버지가 산에 있는 밭에 가신다고 하시고 6시가 넘어도 돌아오시지 않아서 결국 경찰서에 가서 신고를 했지요. 그리고 경찰과 소방관들의 도움으로 8시에 산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되셨어요. 지금도 모든 일이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쓰러진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마지막 순간이 아니길 빌면서 기다렸는데, 40분 만에 뇌출혈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고 수술을 받으신 뒤 코로나 진단까지 받으셨습니다. 이후 총 다섯 번의 수술을 하셨지요.

그때는 만약 아버지 수술을 못 하면, 치료를 못 하면 나중에 너무 큰 후회가 남을 것 같아서 수술을 선택했습니다. 돈도 많이 들어갔지만 정신적으로도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도 나의 아버지인데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만약 돌아가시면 이제 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 없잖아요. 그게 너무 힘들었어요.

돈도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음압 병동에서 여러 번의 수술을 하고 중환자실까지 두 달을 계셨는데, 비용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가족이 들어갈 수 없어서 간병인을 쓸 수밖에 없었고요. 어머니와 새벽기도를 마치고 항상 병원에 있는 아버지의 창문을 보며 기도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어머니도 너무 힘들어서 정신과에서 신경 안정제를 처방받으셨지요.

이후 2차 병원을 거쳐 3차 병원인 요양병원에서 3년을 보내셨어요.

어머니와도 많이 이야기했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저는 아버지 수술을 시켰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평생 후회할까 봐, 혹시라도 치료를 받으면 살아나실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 돈이 부족해지니, ‘돈이 더 있었으면 더 치료했을까’ 하는 생각에 너무 서럽더라구요.

6개월쯤 지나 아버지 뇌에 척수를 배출하는 라인에 문제가 생겨 다시 시술을 받으러 1차 병원에 가야 했습니다. 검사도 하고 앰뷸런스도 타고 갔지요. 그때도 돈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쓰려는 이야기는 여기서부터입니다.

엑스레이 사진을 찍으려고 병원 대기실에서 침대 위에 누워 계신 아버지 곁에 함께 있었는데, 아무것도 못 하시는 분이 저를 계속 바라보시는 거예요. 혹시 저를 알아보시나 싶어서 마스크를 벗고
“아버지, 저예요. 아들, 큰아들이에요.”
라고 말했지요.

그런데 계속 저를 바라보시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아버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들이에요, 아버지. 아들.”
이라고 말했어요. 다정한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는데 눈물이 나더군요. 눈동자 돌리는 것도 힘든 분이 눈물을 흘리시는 걸 보고, ‘내가 아들인 걸 아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미칠 것 같았습니다. 엄청 울었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다시 천장을 바라보시는 거예요.
“아버지, 아들이에요.”
라고 다시 말해도 계속 곁눈으로 천장을 보셨습니다.

아무것도 못 하고 고통스러운 치료와 시술을 받고 나오는데, 의사가 집에 가서 재활 치료를 하라고 하더군요. 눈동자 돌리는 것도 힘든 분을 어떻게 집으로 모시나 싶었습니다. 가슴에 가래가 차서 기침을 심하게 하셨고, 그 소리는 정말 가슴이 찢어지는 소리 같았습니다.

그렇게 3차 요양병원에서 3년을 보냈습니다. 어머니는 일주일에 한 번씩 면회를 가셨고, 저는 돈을 벌어보려고 애쓰다 실패하고 다시 일을 했지요. 어머니는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하면 후회할 것 같다며, 제가 “2주에 한 번만 가세요”라고 말씀드려도 꼭 일주일에 한 번씩 가셔서 찬송가를 불러드리고 대화를 시도하셨습니다.

먹는 것도 힘들어 목에 구멍을 뚫은 상태였으니 대화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혼자 발을 주무르고 손을 주무르며 찬송가를 부르셨지요. 동생이 사업을 하며 병원비를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가족 모두 힘들었지만, 누구 하나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아버지가 그렇게 힘들어도 살아 계셨기 때문입니다. 돌아가시면 이제 다시는 못 보잖아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 작년 12월 둘째 주에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를 찾아갔습니다. 아버지의 눈이 갑자기 맑아지고 사람을 지긋이 바라본다는 이야기를 듣고 갔는데, 정말로 저를 지그시 바라보시더군요. 아버지의 눈을 보며 머리를 쓰다듬고
“아버지, 9년 만에 일어난 사람도 있대요. 누가 알아요. 아버지가 일어나시면 교회에서 간증하면 정말 대박이에요.”
라고 몇 번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 눈에서 눈물이 흘렀어요. 좋아지시는 건가 싶어 그렇게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계속 하늘을 응시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예전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주일 아침 예배가 끝나 점심을 먹고 집에 가려고 차에 오르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연락이었어요. 바로 병원으로 갔더니 임종 환자 병실에 계셨습니다. 너무 힘들게 숨을 쉬고 계셨고, ‘이제 마지막이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아버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버지, 사랑해요.”
라고 말했는데, 예전처럼 곁눈으로 하늘을 계속 바라보셨어요. 어머니가 아버지를 쓰다듬으며
“당신, 힘들면 이제 예수님 손 잡고 편하게 천국에서 다시 만나요.”
라고 말씀하시자,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저는 3일이나 일주일 정도면 돌아가시겠다고 생각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저녁 예배를 가려고 차를 타고 주차장에 들어섰을 때 어머니에게 다시 전화가 왔고, 곧이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병실에 갔더니 아버지는 눈을 뜨고 계셨습니다. 눈물이 터져 한참을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습니다. 눈을 감겨드리려 했지만 잘되지 않더군요. 그렇게 장례 절차가 시작되었고, 모든 과정을 마친 뒤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이것은 저 자신에 대한 위로일 수도 있고, 저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1차 병원에서 검사받으러 갈 때 아버지는 이미 천국 문이 열린 것을 보셨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식이 자신을 살리려고 하는 마음을 느끼고 눈물이 나셨던 것 같아요.

그리고 사력을 다해 3년을 버티셨고, 지난 12월 자신이 하늘나라로 갈 것을 알고 저를 그렇게 다정하게 바라보셨던 것 같습니다. 어제 다시 천국 문을 보셨고, 어머니가 예수님 손을 잡으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손을 잡으신 것 같아요.

세 번의 전화 모두 예배 시간 근처에 왔습니다. 아버지가 항상 예배드리던 시간이었거든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저에게 말하고 싶으셨던 것은 이것이었을 겁니다.
“아들아, 네가 나를 살리려고 애쓰는 걸 보고 나도 3년 동안 최선을 다해 버텼다. 죽을 힘을 다해 노력했다. 천국 문을 보고도 네 마음 때문에 돌아왔다. 이제는 내가 하늘에서 너희를 지켜볼 테니 슬퍼하지 마라.”

그래서 지금 저는 많이 행복합니다. 아버지에게 미안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아버지를 살리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버지도 알고 계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눈을 뜨고 돌아가신 모습에 놀랐지만, 이제는 우리에게 마지막 말씀을 그렇게 남기신 것 같아 마음이 평안합니다.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요.
아버지, 사랑해요.
아버지는 이제 제 마음에 있어요.
언제든지 제 마음속에서 뵐 수 있습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중국의 뉴욕, 중국 근대사의 아픔을 품은 상하이의 역사를 살펴볼까요 [도시 역사 시리즈 3]

도쿄 행정 구역(간략한 정리) [행정 구역, 시리즈 1]

일본 행정구역(간략한 정리 -도도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