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역사를 살펴볼까요.
서울은 만들어진 도시가 아니고 선택된 도시입니다. 사람은 물을 따라 모이고 권력은 길을 따라 이동합니다. 결국 수도는 가장 오래 버틴 땅에 남게 되지요. 한강은 바다로 열려져 있고 서울은 내륙으로 깊이 파고 들어 잇으며 북쪽과 남쪽을 도시에 바라보고 있지요.
서울은 백제를 시작했던 수도이고 고구력에게는 남진의 열쇠였으며 신라에게는 전략적 요충지였고 고려에게는 보조 수도였고 조선에게는 500년의 심장이였습니다.
일제는 서울의 뼈를 바꾸려고 했고 전쟁은 도시를 폐허로 만들었지만 서울은 다시 스스로 재건했습니다.
서울은 궁궐의 그림자 위에 빌딩을 세운 도시이고 과거와 미래가 동시에 숨쉬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GPT가 설명한 글을 제가 조금 바꾸어 보았습니다.
암사동에 선사 유적지가 있습니다. 고인돌도 있고요. 이미 선사시대부터 교통과 물자이동 그리고 농경에 최적화 되어있던 곳이지요.
백제시대(기원전 18년 -473)에 한성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의 자리에 최초의 수도를 세웁니다. 그당시 만들어진 것이 왕성의 구조인 풍납토성과 몽촌 토성이지요. 백제의 수도 한성은 한강을 통해 해상과 대륙 교역의 중심지가 됩니다.
고구려(475년이후)는 장수왕이 남진을 결정하고 한성을 함락시키고 고구려 남진 정책의 거점으로 사용합니다.
신라는 삼국통일 과정에서 한강 유역을 확보하고 수도는 경주이지만 서울을 전략적 요충지로 사용합니다.
고려시대에는 개성이 수도였지만 제 2의 수도로 서울을 남경이라고 불르고 왕의 행차와 별국을 짓고 행정의 중심지로 사용하였습니다. 이때 풍수적으로 서울을 왕기가 흐르는 땅으로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드시어 조선시대에 이성계가 권력을 잡고 고려의 세력들을 피하여 서울의 자라에 한양이라는 이름으로 수도를 정합니다. 그리고 서울에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을 짓게 되고 한양도성(성곽 도시)을 짓게 됩니다. 그리고 종로에는 상업중심지역이 생기게 되고 사대문안에는 정치 행정 문확의 중심지가 생기게 됩니다. 적어도 조선에게는 500년동안 서울이라는 곳이 국가 운영 시스템 그 자체가 됩니다.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에는 서울을 통해 서구 문물이 유입되고 서울을 경성이라고 부르고 일복식 도시계획을 도입하면서 전통의 도성을 휘순하고 근대 인프라를 도입합니다. 그것이 철도, 전차, 근대 행정체계의 도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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